2.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제체제 전환: 전통에서 자본주의의 혼합 경제 체제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유럽식 경제 행위가 도입된 것은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케이프 타운에 식료품 보급소를 건설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이 시기만 해도 자본주의 경제 활동은 극히 제한된 지역, 예를 들어, 케이프 타운과 같이 선박에 물품을 공급할 수 있는 항구지역에 머물렀고 그리 큰 노동력이 필요치 않아 남아공 흑인 사회에 미친 영향력도 미미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와 금의 발견은 모든 것을 뒤집어 놓을 만큼 혁명적인 것이었다. 다이아몬드와 금이 발견된 19세기 말부터 남아공의 경제 체제는 급속히 독점 자본주의의 형태를 띄어가기 시작했다. 또한 상업 농경도 시작이 되 크와줄루-나탈 해안가를 따라 거대한 사탕수수 밭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러한 식민 경제의 도입은 남아프리카 흑인들의 전통적인 경제 구조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사회-문화 구조를 변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다이아몬드와 금광의 발견
1860년대 말, 남아공의 중북부에 있는 킴벌리(Kimberley)라고 하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비쯔바터스란트(Witwatersrand)를 중심으로 대규모 다이아몬드와 금광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향후 50년간에 걸쳐 이 광산 자원은 남아공의 경제 구조 자체를 바꿔놓는 주춧돌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시작해서 1915년, 즉 1차 세계 대전을 전후로 한 시점까지 광산 자원을 기반으로 한 산업이 남아공 경제의 주춧돌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런데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광산업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제조업의 중심은 군수물자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 산업 구조를 말한다.
다이아몬드와 금광의 발견은 본격적인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형성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세 가지 측면에서 그 특성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1) 임노동자의 착취가 시작되었다.
2) 광산업은 농업과 제조업 분야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3) 광산업은 임노동자(흑인)을 착취하기 위한 수많은 사회 제도와 법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이주 노동자 통제법, 통행증, 거주 제한법, 노동의 인종 분업 등).
일단 백인 정부는 광산에서 일할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를 위해 남아공에 살고 있는 흑인들을 강제로 끌어들여 광산에 투입을 했다. 하지만 흑인들은 남의 밑에서 임금 노동자로 생활을 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생산력은 그리 높지 못했다. 그 대안으로 남아공의 백인 정부는 인근 국가, 특히 모잠비크에서 인력을 대거 수입해 광산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1862년 과 1904년에는 각각 인도와 중국에서 대규모 인력을 수입해 와 광산과 철도 건설에 노동력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주 노동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흑인들을 끌어내기 위해 남아공 정부는 각종 억압 장치를 가동하기 시작하는데 먼저 흑인 사회에 가구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가구세는 반드시 현금으로 납부해야 했던 만큼 흑인들은 현금을 찾아 광산지역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 사회적으로 생산력이 있는 흑인은 일년에 일정 기간을 광산 등지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경제 구조를 급속히 붕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각 지역의 추장들은 백인 정부로부터 뇌물을 받고 사람 머리 수당 일정 금액을 지급 받기로 약속을 하고 자기 지역 사람들을 광산으로 수출하는 중개인 역할을 했다. 신종 노예 무역이 행해졌던 것이다.
1) 전통 경제 구조의 붕괴
(1) 생태학적인 변화로 인한 목축 생산 양식의 붕괴(i.e., 사탕수수밭).
(2) 각종 세금 납부 의무 ... 전통 경제 행위자들의 임노동자 화.
(3) 농업의 상업 화 ... 대규모 농업 기업가의 대두(주로 소수 백인).
(4) 토지를 빼앗김.
(5) 건장한 남성은 노예로 팔려 나감.
이러한 강제 이주 노동은 단순히 아프리카의 전통 경제 체제만을 붕괴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남성들이 강제 이주 노동을 떠나면서 전통적인 가족 체제가 붕괴되어 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기초를 놓은 연설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dis 스머츠의 연설문은 서양의 지식인이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라는 텍스트가 논리적으로 정책화되어 가는 과정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얀 스머츠는 1929년 옥스퍼드 로즈 기념 강의에서 "아프리카에서의 토착인에 관한 정책(Native Policy in Africa)"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는데, 이것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발아(發芽)였다고 본다. 이 연설은 후에 남아프리카 유니언(South African Union,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신) 정부가 토착인 대표 법(Native Representation Act)과 토착인 토지법(Native Lands Act)을 입법화하는 기초를 제공했다.
스머츠의 아프리카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의 틀은 아프리카에서 당 시대를 살고 있던 대다수 백인들의 아프리카 인식론을 대표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것은 죠지 5세가 아프리카 인들을 '어린 아이'라고 묘사한 것과 백인들이 흑인들의 나이를 불문하고 '보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스머츠는 아프리카는 '원초적으로 인류의 모체와 같고 인류의 요람'이라고 규정함과 동시에 이 대륙에 살고 있는 토착인들은 '어린이와 같은 심리 상태와 외형을 가지고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것이 스머츠가 계획하고 있던 분리정책의 시발점이었다. 스머츠는 계속해서 "어린아이와 같은 인간은 나쁜 심성을 가질 수가 없다"(1940, 37쪽)면서 유럽에서 도입된 문명을 흑인 사회에 적용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심성을 가진 "아프리카 인들의 정신적 기반을 파괴시킬 수도 있다"(같은 책, 38쪽)고 경고하고 있다. 야만적인 상태에서 시작된 아프리카 토착인들에게 유럽에서 시발된 평등권과 참정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흑인들에게 전혀 좋은 현상이 아닐뿐더러 이로 인해 흑인들 전통적인 문화와 사회 제도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스머츠의 분석이다(같은 책, 39쪽). 스머츠는 계속해서 주장하기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유럽식 경제 행위가 도입된 것은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케이프 타운에 식료품 보급소를 건설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이 시기만 해도 자본주의 경제 활동은 극히 제한된 지역, 예를 들어, 케이프 타운과 같이 선박에 물품을 공급할 수 있는 항구지역에 머물렀고 그리 큰 노동력이 필요치 않아 남아공 흑인 사회에 미친 영향력도 미미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와 금의 발견은 모든 것을 뒤집어 놓을 만큼 혁명적인 것이었다. 다이아몬드와 금이 발견된 19세기 말부터 남아공의 경제 체제는 급속히 독점 자본주의의 형태를 띄어가기 시작했다. 또한 상업 농경도 시작이 되 크와줄루-나탈 해안가를 따라 거대한 사탕수수 밭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러한 식민 경제의 도입은 남아프리카 흑인들의 전통적인 경제 구조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사회-문화 구조를 변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다이아몬드와 금광의 발견
1860년대 말, 남아공의 중북부에 있는 킴벌리(Kimberley)라고 하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비쯔바터스란트(Witwatersrand)를 중심으로 대규모 다이아몬드와 금광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향후 50년간에 걸쳐 이 광산 자원은 남아공의 경제 구조 자체를 바꿔놓는 주춧돌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시작해서 1915년, 즉 1차 세계 대전을 전후로 한 시점까지 광산 자원을 기반으로 한 산업이 남아공 경제의 주춧돌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런데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광산업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제조업의 중심은 군수물자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 산업 구조를 말한다.
다이아몬드와 금광의 발견은 본격적인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형성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세 가지 측면에서 그 특성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1) 임노동자의 착취가 시작되었다.
2) 광산업은 농업과 제조업 분야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3) 광산업은 임노동자(흑인)을 착취하기 위한 수많은 사회 제도와 법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이주 노동자 통제법, 통행증, 거주 제한법, 노동의 인종 분업 등).
일단 백인 정부는 광산에서 일할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를 위해 남아공에 살고 있는 흑인들을 강제로 끌어들여 광산에 투입을 했다. 하지만 흑인들은 남의 밑에서 임금 노동자로 생활을 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생산력은 그리 높지 못했다. 그 대안으로 남아공의 백인 정부는 인근 국가, 특히 모잠비크에서 인력을 대거 수입해 광산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1862년 과 1904년에는 각각 인도와 중국에서 대규모 인력을 수입해 와 광산과 철도 건설에 노동력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주 노동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흑인들을 끌어내기 위해 남아공 정부는 각종 억압 장치를 가동하기 시작하는데 먼저 흑인 사회에 가구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가구세는 반드시 현금으로 납부해야 했던 만큼 흑인들은 현금을 찾아 광산지역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 사회적으로 생산력이 있는 흑인은 일년에 일정 기간을 광산 등지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경제 구조를 급속히 붕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각 지역의 추장들은 백인 정부로부터 뇌물을 받고 사람 머리 수당 일정 금액을 지급 받기로 약속을 하고 자기 지역 사람들을 광산으로 수출하는 중개인 역할을 했다. 신종 노예 무역이 행해졌던 것이다.
1) 전통 경제 구조의 붕괴
(1) 생태학적인 변화로 인한 목축 생산 양식의 붕괴(i.e., 사탕수수밭).
(2) 각종 세금 납부 의무 ... 전통 경제 행위자들의 임노동자 화.
(3) 농업의 상업 화 ... 대규모 농업 기업가의 대두(주로 소수 백인).
(4) 토지를 빼앗김.
(5) 건장한 남성은 노예로 팔려 나감.
이러한 강제 이주 노동은 단순히 아프리카의 전통 경제 체제만을 붕괴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남성들이 강제 이주 노동을 떠나면서 전통적인 가족 체제가 붕괴되어 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기초를 놓은 연설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dis 스머츠의 연설문은 서양의 지식인이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라는 텍스트가 논리적으로 정책화되어 가는 과정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얀 스머츠는 1929년 옥스퍼드 로즈 기념 강의에서 "아프리카에서의 토착인에 관한 정책(Native Policy in Africa)"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는데, 이것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발아(發芽)였다고 본다. 이 연설은 후에 남아프리카 유니언(South African Union,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신) 정부가 토착인 대표 법(Native Representation Act)과 토착인 토지법(Native Lands Act)을 입법화하는 기초를 제공했다.
스머츠의 아프리카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의 틀은 아프리카에서 당 시대를 살고 있던 대다수 백인들의 아프리카 인식론을 대표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것은 죠지 5세가 아프리카 인들을 '어린 아이'라고 묘사한 것과 백인들이 흑인들의 나이를 불문하고 '보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스머츠는 아프리카는 '원초적으로 인류의 모체와 같고 인류의 요람'이라고 규정함과 동시에 이 대륙에 살고 있는 토착인들은 '어린이와 같은 심리 상태와 외형을 가지고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것이 스머츠가 계획하고 있던 분리정책의 시발점이었다. 스머츠는 계속해서 "어린아이와 같은 인간은 나쁜 심성을 가질 수가 없다"(1940, 37쪽)면서 유럽에서 도입된 문명을 흑인 사회에 적용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심성을 가진 "아프리카 인들의 정신적 기반을 파괴시킬 수도 있다"(같은 책, 38쪽)고 경고하고 있다. 야만적인 상태에서 시작된 아프리카 토착인들에게 유럽에서 시발된 평등권과 참정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흑인들에게 전혀 좋은 현상이 아닐뿐더러 이로 인해 흑인들 전통적인 문화와 사회 제도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스머츠의 분석이다(같은 책, 39쪽). 스머츠는 계속해서 주장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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