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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제체제 전환: 전통에서 자본주의의 혼합 경제 체제로 - 2

africa club 2001. 10. 22. 17:27
만일 아프리카가 올바른 위치를 잡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다른 노선을 택해서 토착인에 대한 정책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 정책은 토착인의 전통적인 제도를 낯선 유럽의 제도적 틀에 끼워 맞추려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이와 반대로 이 정책은 아프리카의 과거를 배경으로 토착인들의 단결을 보존하고 과거에 소중했던 것들을 유지하며 아프리카 토착인들의 기반을 바탕으로 미래적인 진보와 문명을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같은 책, 39쪽)

이를 위해 스머츠는 로즈(Rhodes)가 실시했던 글렌 그레이 법(Glen Grey Act)을 상기시킨다. 글렌 그레이 법은 백인 정착민 사회가 굳건한 사회 구조적 틀을 제공하면서 지속적인 문명화의 동기를 부여하고 흑인 사회는 자신들의 특성에 맞춰 문명과 발전에 대한 미래를 건설해 나가는데 있다. 하지만 흑인들의 제도는 야만적이기 때문에 "유럽인이 세운 행정청의 총괄적인 감독을 받아야"(같은 책, 46쪽)한다고 지적한다.
스머츠에게 흑인들의 독자적인 발전은 현재와 같이 흑인과 백인이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는 한 요원한 것이었다. 따라서 스머츠는 백인 사회와 흑인 사회에 모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방편은 흑인 사회와 백인 사회를 물리적으로 가르는 "분할(segregation)" 정책을 펴는 것이었다(같은 책, 48쪽). 스머츠는 '분할(segregation)'을 "흑인과 백인이 분리된 공간에서 각기 다른 사회 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각기 다른 사회 제도를 갖는 다는 것은 흑인과 백인 사이에 물리적인 장벽을 쌓는 것을 의미했다. 흑인과 백인간의 물리적 분할은 흑인의 독자적인 발전을 유도할 뿐 아니라 흑인과 백인이 섞임으로써 발생할 수 있을 사회적 문제들, 예를 들어, 공공위생, 인종의 순수성 그리고 공공질서,을 방지할 수 있는 최상의 정책이었다. 여기에 스머츠가 진정으로 걱정했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스머츠는 흑인과 백인이 섞임으로써 필연적으로 발생할 백인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1917년에 행한 연설에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연설에서 스머츠는 "흑백간의 혼혈은 없어야 한다"라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스머츠는 정치적 연합과 국가적인 단결을 웅변하고 있지만 이것은 영국계 백인과 보어계 백인간의 단결을 의미할 뿐 흑인을 위한 배려는 그의 연설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스머츠의 아프리카 흑인에 대한 기본 인식은 이미 앞서 소개한 메리 더글러스의 순수와 오염간의 관계에 비추어 보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스머츠의 흑백에 관한 논리는 아주 단순하다. 흑인은 더럽고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에 순수한 백인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흑인은 백인 사회라는 질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흑인을 위한 '구역'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으며 흑인은 흑인을 위한 구역 안에서 머물 때 그 사회적 존재가 인정될 수 있다. 흑인이 질서를 무시한 채(규제를 어긴 채) '구역'을 벗어나는 것은 사회적으로 위험하고 정당화 될 수 없는 행위였다. 더군다나 흑백간의 성적 결합은 흑인의 이탈 행위 중 가장 위험한 것이므로 어떠한 이유를 막론하고 이는 제지해야 한다. 스머츠는 흑백간의 혼합은 사회적으로 매우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믿었다.
그 결과 남아프리카 백인 정부는 1948년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흑인들을 격리시킬 '반투스탄(Bantustan)' 정책을 실시했다. 일명 홈랜드 정책이라고도 알려진 반투스탄은 남아공의 전체 국토 면적의 13%에 해당하는 1천 6백만 ha에 1천 3백만 흑인인구를 강제 이주시켰다.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는 Purity and Danger(1970)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인식하고 있는 사물의 더러움과 청결함의 차이는 질서와 무질서의 차이에서 연유하는 것이라고 본질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흑인에 대한 인식론을 적절하게 설명하는 예라고 볼 수 있다. 더글러스에 의하면 우리가 인식하는 순수함과 더러움의 차이는 사물의 속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연관맺고 있는 사회 질서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더러움이 질서를 지켜 자기에게 부여된 장소에 머물고 있을 때에는 그 더러움은 청결함에 위협이 되지 않지만 일단 더러움이 제 위치를 벗어나 청결함의 영역에 들어오게 되면 그것은 전체 질서를 위협하는 위험한 요소가 된다(Marry Douglas, 1970, 53쪽).
메리 더글러스의 인식론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사회 제도와 흑인과의 관계를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남아프리카에 화란계 백인들이 첫 발을 들여놓고 정착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선민의식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인종적 순수성을 유지해 나가기를 원했다. 따라서 이들은 불결한 주변 환경 - 특히 인접해 있는 흑인 사회 -을 자신들의 존재를 위협하는 요소로 인식했다. 이들 백인 정착민들은 이미 서양에서 텍스트화된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사회와 흑인 사회간에 철저한 질서를 유지하기를 원했다.
백인 정착민들에게 흑인들은 위생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더럽고 위험한 존재였다. 따라서 이들은 흑인들을 적절한 장소에 격리하기를 원했다. 백인 정착민의 수가 늘어나고 백인 사회가 점점 제도화되어 가면서 흑인 사회에 대한 이러한 인식도 점차 제도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사회 제도로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