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아프리카 역사
영국의 아프리카 역사가 흡킨스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1960년이 (아프리카 독립의 해) 이전의 식민지시대 유럽인의 아프리카관(觀)은 아프리카를 자연이나 인간의 낙원으로 보는 (메리 아프리카) 또는 원시적이고 미개하다고 보는 (프리미티브 아프리카)의 두 극단의 (신화)로 채색되어 있었으며 그곳에 사는 아프리카인이 주체가 된 참된 의미의 역사는 쓰여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독립을 달성하고 모든 면에서 아프리카인화가 이루어져 감에 따라 역사연구 분야에서도 종래의 (신화)를 분쇄하고, 유럽인 대신 아프리카인사가가 주체적으로 역사를 쓰려는 기운이 높아졌다. 그러한 경향이 확대되면서 종래의 유럽인 중심 사관의 역사가 서서히 개정되어가고 있다.
아프리카 역사는 대륙의 자연 환경의 다양성만큼 그 역사도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성이 나타나는 주요 원인을 보면 먼저 식민지 영향을 들 수 있다. 아프리카 각각의 나라들은 공용어나 행정 및 교육제도, 건축양식, 농작물의 종류 등 모든 분야에서 그들의 종주국이었던 프랑스, 영국, 포르투갈 등의 특징을 보여준다. 둘째는 국가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른 이데올로기적 형태에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지도자의 개성이나 국가적 경제현실 혹은 식민통치에 대한 반발 등에 의해 생성된 것으로 탈냉전이후 이같은 현상은 많이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셋째는 아프리카대륙이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6억여의 비교적 인구에 비해 50개가 넘는 국가형태의 정치 단위는 그 다양성을 더해 주고 있는 원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넷째는 아프리카대륙의 지형이 다른 대륙에 비해 복잡하며 기후 또한 다양하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인구규모, 인구집중, 종족 구성 등의 문제가 복잡하다는 것이다.
현재 아프리카 총인구는 약 6억 2천만명으로, 북부에는 아랍계와 베르베르계(혼혈 포함)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사하라 이남의 블랙아프리카에는 니그로이드형(型), 피그미형, 코이산형(부시맨·호텐토트 등)등 여러 종족이 살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약 900여 부족이 있으며,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약 800종류나 된다. 그러나 식민지시대 이후부터 독립기를 거친 오늘날에도 북부의 아랍어권을 제외하면, 대부분 영어·프랑스어·포르투갈어 등 옛 식민국의 언어가 공용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블랙아프리카는 15세기말부터 유럽 열강의 침략을 받아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노예무역의 희생물이 되었고,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에 걸쳐서 분할, 식민지화되었으며, 제2차세계대전 뒤 식민지 체제의 붕괴로 북아프리카와 함께 독립 시대를 맞이하였다.
아프리카사의 특색으로 두 가지 점이 지적된다.
첫째, 아프리카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무문자사회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종의 역사연구가 문자에 의한 사료(史料)를 중시하는 한, 아프리카사 연구는 큰 난점을 지닌다고 할 수 있으나, 문자가 없다는 것을 바로 역사가 없다는 것으로 보는 것은 큰 잘못이며, 실제로 아프리카의 역사는 구전으로 후대에 전해져 내리고 있다. 물론 구전이라는 것이 전승과정에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왜곡이 뒤따를 수 있는 일이기에 일정한 전승비판이나 비교연구 또는 언어학·문화인류학 등 역사 보조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무엇보다도 구전의 바탕이 되어 있는 부족어의 습득은 빼놓을 수 없다. 그런 뜻에서 아프리카인 사가의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
둘째, 아프리카 대륙은 결코 고립된 대륙이 아니라 예로부터 여러 다른 민족과 접촉을 통해서 영향을 받아 왔다는 사실이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북아프리카 식민, 사하라를 넘는 교역, 동아프리카 해안의 아랍인의 영향, 노예무역과 그 뒤의 식민지화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 중반에 걸쳐 불과 70년간이었으며 아프리카사 흐름 속에서는 아주 짧은 기간이었다.
다음은 아프리카사를 식민지화 이전, 식민지시대, 독립기의 셋으로 나누어 각 시기를 세분화하여 살펴본 것이다.
영국의 아프리카 역사가 흡킨스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1960년이 (아프리카 독립의 해) 이전의 식민지시대 유럽인의 아프리카관(觀)은 아프리카를 자연이나 인간의 낙원으로 보는 (메리 아프리카) 또는 원시적이고 미개하다고 보는 (프리미티브 아프리카)의 두 극단의 (신화)로 채색되어 있었으며 그곳에 사는 아프리카인이 주체가 된 참된 의미의 역사는 쓰여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독립을 달성하고 모든 면에서 아프리카인화가 이루어져 감에 따라 역사연구 분야에서도 종래의 (신화)를 분쇄하고, 유럽인 대신 아프리카인사가가 주체적으로 역사를 쓰려는 기운이 높아졌다. 그러한 경향이 확대되면서 종래의 유럽인 중심 사관의 역사가 서서히 개정되어가고 있다.
아프리카 역사는 대륙의 자연 환경의 다양성만큼 그 역사도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성이 나타나는 주요 원인을 보면 먼저 식민지 영향을 들 수 있다. 아프리카 각각의 나라들은 공용어나 행정 및 교육제도, 건축양식, 농작물의 종류 등 모든 분야에서 그들의 종주국이었던 프랑스, 영국, 포르투갈 등의 특징을 보여준다. 둘째는 국가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른 이데올로기적 형태에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지도자의 개성이나 국가적 경제현실 혹은 식민통치에 대한 반발 등에 의해 생성된 것으로 탈냉전이후 이같은 현상은 많이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셋째는 아프리카대륙이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6억여의 비교적 인구에 비해 50개가 넘는 국가형태의 정치 단위는 그 다양성을 더해 주고 있는 원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넷째는 아프리카대륙의 지형이 다른 대륙에 비해 복잡하며 기후 또한 다양하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인구규모, 인구집중, 종족 구성 등의 문제가 복잡하다는 것이다.
현재 아프리카 총인구는 약 6억 2천만명으로, 북부에는 아랍계와 베르베르계(혼혈 포함)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사하라 이남의 블랙아프리카에는 니그로이드형(型), 피그미형, 코이산형(부시맨·호텐토트 등)등 여러 종족이 살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약 900여 부족이 있으며,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약 800종류나 된다. 그러나 식민지시대 이후부터 독립기를 거친 오늘날에도 북부의 아랍어권을 제외하면, 대부분 영어·프랑스어·포르투갈어 등 옛 식민국의 언어가 공용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블랙아프리카는 15세기말부터 유럽 열강의 침략을 받아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노예무역의 희생물이 되었고,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에 걸쳐서 분할, 식민지화되었으며, 제2차세계대전 뒤 식민지 체제의 붕괴로 북아프리카와 함께 독립 시대를 맞이하였다.
아프리카사의 특색으로 두 가지 점이 지적된다.
첫째, 아프리카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무문자사회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종의 역사연구가 문자에 의한 사료(史料)를 중시하는 한, 아프리카사 연구는 큰 난점을 지닌다고 할 수 있으나, 문자가 없다는 것을 바로 역사가 없다는 것으로 보는 것은 큰 잘못이며, 실제로 아프리카의 역사는 구전으로 후대에 전해져 내리고 있다. 물론 구전이라는 것이 전승과정에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왜곡이 뒤따를 수 있는 일이기에 일정한 전승비판이나 비교연구 또는 언어학·문화인류학 등 역사 보조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무엇보다도 구전의 바탕이 되어 있는 부족어의 습득은 빼놓을 수 없다. 그런 뜻에서 아프리카인 사가의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
둘째, 아프리카 대륙은 결코 고립된 대륙이 아니라 예로부터 여러 다른 민족과 접촉을 통해서 영향을 받아 왔다는 사실이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북아프리카 식민, 사하라를 넘는 교역, 동아프리카 해안의 아랍인의 영향, 노예무역과 그 뒤의 식민지화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 중반에 걸쳐 불과 70년간이었으며 아프리카사 흐름 속에서는 아주 짧은 기간이었다.
다음은 아프리카사를 식민지화 이전, 식민지시대, 독립기의 셋으로 나누어 각 시기를 세분화하여 살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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