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빈곤의 위기
금세기 말에서 살펴보면 대부분의 아프리카에 대한 일반적 전망, 무엇 보다도 사헬지역과 적도지역은 고통스럽고 처량하게 보인다. 사헬지대, 에티오피아, 수단, 챠드 그리고 말리에서 두더러진 주기적인 가뭄은 무자비한 죽음의 희생과 세계경제 침체로 부터 온 경제전망 악화로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개발'의 잘못된 정책, 제도적 안정화의 붕괴로 인한 '원조' 사용의 잘못과 어떤 효율적인 방법으로 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제도적 능력의 붕괴, 은 통치 단체들의 무책임성 혹은 군사 지도자들의 헛된 출세주의와 함께 결부되어 있다. 1984년까지 그들 자신들의 소비를 위한 식량의 1인당 생산량은 , 공식적 추정에 따르면, 1960-65년 시장에 나온 평균 생산량의 75%정도 하락하였다. 여전히 농지는 감소하고 있는데 역사이래 처음으로 식량수입을 남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이 수입들에 대해서도 대금을 더 이상 지불하지 못하고 있다. 해외로 부터의 많은 차관도입은 종종 이자가 매우 높은 것이며 아프리카 외채이행 비율(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수입품을 사기 전에 외채를 갚아야 하는 수출로서 벌어들이는 비율)은 1974년 4.6%에서 1983년에는 20.3%로 증가하였으며 1987년까지 그 비율은 확실하게 악화되었다. 통제되지 않는 인구성장은 몇몇 나라에서는 3% 이상으로 치솟고 있는데 현재 기아는 여러 곳에서 위협하고 있다. 차관반환 이행 실패는 곳곳에서 발생했으며 점차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가난 흐름의 반전에 대한 노력은 1980년대 동안 계속되었고 이것들 중 몇몇은, 짐바브웨와 같은 대제국 혹은 케이프베르데 같은 소국가에서 든지, 다루기 힘들며 이지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개념을 가진 일반적 추세는 과거 전 식민지로 부터 그러나 보다 분명히는 1900년 이래 시대 부터 물려받은 구조적인 방해와 혼란의 관련들을 해결하는데 무능력이 반영되었다. 이같은 관점에서 많은 새롭게 독립한 선천적으로 허약한 국가들 - 여전히 자치 정부의 부적절한 제도 혹은 무능력을 가진 - 은 경제적 힘과 변화의 舊 관계들에 있어 발전되고 산업화된 세계와 단절하는 방향으로 그들의 관계를 변경하였다. 그러므로 그것은 식민지 시기에 건설된 '불평등 교환' 무역의 의미가 있는 탈식민지 국가들에 의한 여러 항의에 대항하는 것들을 가져왔는데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외국과 사고 팔고 해야만 하는 지배적인 골격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같은 이야기에 대한 예를 한가지 제시하면, 1972년 탄자니아는 7톤 트럭을 사기위해 사이살마 38톤을 지불했으나 10년후에는 똑같은 트럭을 사기위해 134톤을 지불해야 했다. 비록 무역의 조건들이 유동적이지만 아프리카로 부터의 '부의 추출'은 이전처럼 계속되었다.
만약 대륙의 대재난이 현재 앞에 놓여 있는 것 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대부분의 아프리카 자체내에도 있을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주요 변경도 그것을 바꾸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1986년 까지 동의되어 왔었다. 그 중대한 문제는 아프리카내의 '서부'와 '동부' 사이 그리고 '서부체계'와 '동부체계' 사이의 라이벌 관계로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서구 산업화된 '북부'와 탈식화된 '남부'로 분리되어 있는 물질적 이해의 뿌리깊은 갈등에 있는 것이다. 식민 이전 역사에서 아프리카는 수세기 동안 생존과 발전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왔었다.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초 아프리카에 있어서의 위기는 그 자체에서 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로 부터 온 압력들과 혼란들에 의해 온 것이다. 아프리카의 현 역사에서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은 현재 직면한 재난의 규모에 있다.
금세기 말에서 살펴보면 대부분의 아프리카에 대한 일반적 전망, 무엇 보다도 사헬지역과 적도지역은 고통스럽고 처량하게 보인다. 사헬지대, 에티오피아, 수단, 챠드 그리고 말리에서 두더러진 주기적인 가뭄은 무자비한 죽음의 희생과 세계경제 침체로 부터 온 경제전망 악화로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개발'의 잘못된 정책, 제도적 안정화의 붕괴로 인한 '원조' 사용의 잘못과 어떤 효율적인 방법으로 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제도적 능력의 붕괴, 은 통치 단체들의 무책임성 혹은 군사 지도자들의 헛된 출세주의와 함께 결부되어 있다. 1984년까지 그들 자신들의 소비를 위한 식량의 1인당 생산량은 , 공식적 추정에 따르면, 1960-65년 시장에 나온 평균 생산량의 75%정도 하락하였다. 여전히 농지는 감소하고 있는데 역사이래 처음으로 식량수입을 남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이 수입들에 대해서도 대금을 더 이상 지불하지 못하고 있다. 해외로 부터의 많은 차관도입은 종종 이자가 매우 높은 것이며 아프리카 외채이행 비율(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수입품을 사기 전에 외채를 갚아야 하는 수출로서 벌어들이는 비율)은 1974년 4.6%에서 1983년에는 20.3%로 증가하였으며 1987년까지 그 비율은 확실하게 악화되었다. 통제되지 않는 인구성장은 몇몇 나라에서는 3% 이상으로 치솟고 있는데 현재 기아는 여러 곳에서 위협하고 있다. 차관반환 이행 실패는 곳곳에서 발생했으며 점차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가난 흐름의 반전에 대한 노력은 1980년대 동안 계속되었고 이것들 중 몇몇은, 짐바브웨와 같은 대제국 혹은 케이프베르데 같은 소국가에서 든지, 다루기 힘들며 이지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개념을 가진 일반적 추세는 과거 전 식민지로 부터 그러나 보다 분명히는 1900년 이래 시대 부터 물려받은 구조적인 방해와 혼란의 관련들을 해결하는데 무능력이 반영되었다. 이같은 관점에서 많은 새롭게 독립한 선천적으로 허약한 국가들 - 여전히 자치 정부의 부적절한 제도 혹은 무능력을 가진 - 은 경제적 힘과 변화의 舊 관계들에 있어 발전되고 산업화된 세계와 단절하는 방향으로 그들의 관계를 변경하였다. 그러므로 그것은 식민지 시기에 건설된 '불평등 교환' 무역의 의미가 있는 탈식민지 국가들에 의한 여러 항의에 대항하는 것들을 가져왔는데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외국과 사고 팔고 해야만 하는 지배적인 골격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같은 이야기에 대한 예를 한가지 제시하면, 1972년 탄자니아는 7톤 트럭을 사기위해 사이살마 38톤을 지불했으나 10년후에는 똑같은 트럭을 사기위해 134톤을 지불해야 했다. 비록 무역의 조건들이 유동적이지만 아프리카로 부터의 '부의 추출'은 이전처럼 계속되었다.
만약 대륙의 대재난이 현재 앞에 놓여 있는 것 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대부분의 아프리카 자체내에도 있을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주요 변경도 그것을 바꾸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1986년 까지 동의되어 왔었다. 그 중대한 문제는 아프리카내의 '서부'와 '동부' 사이 그리고 '서부체계'와 '동부체계' 사이의 라이벌 관계로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서구 산업화된 '북부'와 탈식화된 '남부'로 분리되어 있는 물질적 이해의 뿌리깊은 갈등에 있는 것이다. 식민 이전 역사에서 아프리카는 수세기 동안 생존과 발전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왔었다.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초 아프리카에 있어서의 위기는 그 자체에서 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로 부터 온 압력들과 혼란들에 의해 온 것이다. 아프리카의 현 역사에서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은 현재 직면한 재난의 규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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