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프리카의 구전역사가들
모든 사회에서는 놀라운 기억력과 수사학적 재능을 갖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특히 지역사와 지방사에 관해 많은 역사적 자료를 잘 유지하고 전달하기 때문에 구전전통과 역사의 창고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이러한 재능은 음악적 재능과 학문적 능력을 결합시킴으로서 존경받고 또 명성을 얻고 있다. 몇몇 사회에서는 구술예술가들이 전문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사회에서는 사회적 의사소통과 사회적 관계를 관리하는 전문화된 집단으로 인식된다. 예를 들어, 서부 아프리카의 그리오와 남부 아프리카의 임봉기가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서부 아프리카의 그리오와 남부 아프리카의 임봉기는 사회-정치적 시사 해설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비평가로서 그리고 선전가로서 정치적 웅변을 통하여 힘을 통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평가하고 그들의 최근 역사에 대한 논평하고 해설을 한다. 탈식민지 이후 그리오와 임봉기는 더욱 활동이 명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디오프(Diop)와 만델라(Mandela)가 각각 1980년과 1994년 취임한 이후 시들은 TV를 비롯한 모든 방송매체에서 다루어져 왔다.
아프리카 사회들은 각각 다른 종류의 구전전통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정치적 중심을 이루고 강력한 세습 왕조가 있었던 일부 사회에서는 선택된 인물들만이 기억하고, 낭송하며,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구전 역사를 전수하는 역할을 맡았다. 서부 아프리카의 그리오(griot)와 남부 아프리카의 임봉기(imbongi)들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종종 현악기로 음악을 연주하면서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전문적인 궁정 역사가들이 있었던 이러한 국가에서는 전통이 명확하고 정확히 말 그대로 낭송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는데, 그러한 전통은 “고정된(fixed)" 텍스트라 칭하여졌다.
세습 법률에 기반한 중심화된 정치 체제가 없는 사회를 포함하여 다른 사회에서는 구전 전통이 “자유로운(free)" 텍스트가 되는 경향을 띠었다. 여기서 전통은 전문가 계층의 관심사가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연장자나 주술사같은 사회의 전문가집단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사회 구성원 누구에 의해서나 표현될 수 있었다. 고정된 텍스트와 달리, 자유로운 텍스트는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되면서 정확히 말 그대로 낭송되지 않았다. 그들의 말하는 방식 속에는 말하는 사람의 개성이 어느 정도 반영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서부 아프리카의 그리오는 게웰(gewel), 가울로(gawlo), 잘리(jali), 젤리(jeli), 마보(mabo), 디젤리(djeli), 디엘리(dieli), 디젤리바(djeliba), 젤리야(juliya)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어지는데 구전으로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여 전해내려 온 구전역사가이며 이야기꾼(storyteller)으로 '이야기의 대가(Master of Word) ‘이야기의 대가’라는 말은 훌륭한 역사가로서 그리오의 역할을 묘사한 것이다.
'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오가 죽으면 “하나의 도서관이 불타 없어진다”
는 말처럼 아프리카 문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서부 아프리카에서 중앙집권적인 국가형태를 이룩한 말린케(Malinke), 밤바라(Bambara), 풀베(Fulbe), 월로프(Wolof), 투콜로르(Tukulóór), 그리고 소닌케(Soninke)왕국에서 존재하였다. 그들은 왕, 군사적 지도자, 귀족, 그리고 나중에는 이슬람 학자들의 중요한 수행원이었다. 그들의 사회적 임무와는 별도로 그들은 역사, 가계의 혈통의 수호자로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그 주요한 수단은 속담, 노래 그리고 음악이었다. 이들은 역사가이며, 음악가이며, 무용가이며 그리고 연기자로서 부족의 위대함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리오는 어린아이와 어른에게 왕의 법정을 만들어주는 상담자 역할이었다. 음악, 춤, 그리고 이야기 같은 공연예술을 사용하여 부족의 역사를 통하여 기억해야 할 부족과 세대 그리고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오늘날 고대 말리제국의 역사가 재조명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전문 사가이며 찬양시인이며 음악가인 만데족(만딩카(Mandinka), 만딩(Manding), 또는 말린케(Malinke)족으로 불리기도 한다)의 그리오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만데족은 말리, 기니아, 감비아, 세네갈, 코트 디브아르, 부르키나 파소, 그리고 기니비소등 서부 아프리카의 6개국에 분포하여 살고 있다. 만데족은 1468년 이후 하나의 정치적 통일체를 형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주목할만한 동일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그리오를 통해 그들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전해오고 있다. 모든 그리오들의 가장 소중한 역사는 말리 왕국의 첫 번째 왕인 순디아타 케이타(Sundiata Keita)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오는 역사가이고 찬양시인이며 음악가다. 그리도 아직까지 만데족 사회에서 이들의 유일무이한 위상을 정확히 정의할 수 있는 용어가 없다. 순디아타 시대에 그리오는 왕자들을 개인교습하였으며 왕에게 자문을 하였다. 그들은 교육받은 사람들이었으며 현명하였고 현재에 맞닥뜨린 문제들에 대해 역사적 지식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출생, 죽음, 결혼, 사냥, 계절 그리고 전쟁등 마을의 중요한 사건들에 관련된 집단적인 기억과 유산을 보존하는 사람으로서 부족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씨족의 혈통에 대해서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오는 몇 시간, 또는 하루종일 그리오에서 그리오로 전해내려 온 그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다. 1468년 말리제국이 무너진 이후에도 그들의 활동은 언제나 계속되어 논쟁을 중재하고 전통을 확인하며 조언을 하여왔다.
남부 아프리카의 코사족의 구전역사가도 그리오와 비슷한 기능을 하였다. 남부 아프리카에서는 구전 역사가로서 임봉기(imbongi)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지봉고(izibongo)라는 찬양시(praise poem)를 만들어 추장의 역사를 후세에 전해주는 전문가였다. 이들은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여 거의 모든 찬양시를 만들고 즉석에서 공연하였다(Opland 1998, 5).
임봉기는 추장의 궁정에 소속된 중요한 관리로서 찬양자의 이름(praise-names), 승리(victories), 그리고 그의 주인에 대한 찬양할 만한 특징들을 찾아서 기록하는 전문적인 구전역사가였다. 이러한 찬양들은 적을 패배시켰다든지 중요한 외교사절의 접대, 그리고 추장이 내리는 하사품의 분배같은 중요한 때에 행해졌다.
줄루 사회에서 임봉기의 작업은 추장에 대한 찬양을 수집하여 기록하고 전하는 것이다. 부족민들 누구나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찬양을 만들거나 말할 수 있지만 추장에 대한 찬양시를 만들고 공연하는 것은 구전역사가인 임봉기만이 할 수 있었다. 이러한 특별한 작업은 찬양시를 만드는 것 보다 전달(performance)이 더 중요했는데 창조적 작업보다 수집과 완벽한 전달이 더 중시되었다.
임봉기는 추장에 대하여 노래하는 공식적인 지위를 가진 음유시인으로서 역사적 사적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사건을 추장의 면전에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전달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청중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에 많은 구전 역사가들과 예술가들은 부유한 후원자 가족의 고객으로서 활동하였다. 그들의 중요한 일은 이러한 후원자들의 명성과 평판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르완다(Rwanda)의 왕궁에 있는 우무시지(umusizi)는 후원자 가족의 현재 구성원의 업적과 전설적인 과거를 칭찬한다. 이러한 부유층 집안의 힘과 위세를 공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그 집안 지도자의 지위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 남아프리카의 코사족과 줄루족의 임봉기는 지배자의 위세를 강화하는 것이 주요한 임무였다. 공식적인 행사에서 그는 왕족의 역사를 알렸다 몇몇 사회에서는 전통을 기억하고 전하는 일이 다른 개인 또는 전문가의 가족들에게 나누어졌다.
오늘날 후원자 가족 또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연하는 많은 구술예술가들이 있다. 식민지의 경제적 수탈 이후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과학기술 변화의 과정은 이러한 후원관계의 근본적인 부분을 손상시킴에 따라 구술예술가들의 일하는 환경도 변했다. 예술가들은 후원자의 물질적 지원으로부터 더 이상 가치를 두지 않았고 후원자들은 부와 정치적 영향력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렸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 지위, 역할, 그리고 많은 예술가들의 인식들을 심각하게 바꾸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적인 의견의 관리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도 변화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의사소통에서의 혁명과 과학기술은 항상 이러한 아프리카 구술문화의 손해를 보여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기니(Guinea), 세네갈(Senegal), 감비아(Gambia), 말리(Mali) 의 도시에서는 그리오들이 방송매체를 이용하여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그들의 노래와 역사적 이야기는 텔레비전과 국내, 국제적인 라디오 방송국에서 방송되었다. 그들의 공연은 카세트 테이프로 널리 퍼졌기 때문에 먼 시골 지역에까지도 퍼졌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예술가들 몇몇은 크게 성공한 팝가수가 되었고, 때때로 국제적 명성을 이룩하기도 했다.
모든 사회에서는 놀라운 기억력과 수사학적 재능을 갖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특히 지역사와 지방사에 관해 많은 역사적 자료를 잘 유지하고 전달하기 때문에 구전전통과 역사의 창고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이러한 재능은 음악적 재능과 학문적 능력을 결합시킴으로서 존경받고 또 명성을 얻고 있다. 몇몇 사회에서는 구술예술가들이 전문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사회에서는 사회적 의사소통과 사회적 관계를 관리하는 전문화된 집단으로 인식된다. 예를 들어, 서부 아프리카의 그리오와 남부 아프리카의 임봉기가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서부 아프리카의 그리오와 남부 아프리카의 임봉기는 사회-정치적 시사 해설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비평가로서 그리고 선전가로서 정치적 웅변을 통하여 힘을 통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평가하고 그들의 최근 역사에 대한 논평하고 해설을 한다. 탈식민지 이후 그리오와 임봉기는 더욱 활동이 명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디오프(Diop)와 만델라(Mandela)가 각각 1980년과 1994년 취임한 이후 시들은 TV를 비롯한 모든 방송매체에서 다루어져 왔다.
아프리카 사회들은 각각 다른 종류의 구전전통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정치적 중심을 이루고 강력한 세습 왕조가 있었던 일부 사회에서는 선택된 인물들만이 기억하고, 낭송하며,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구전 역사를 전수하는 역할을 맡았다. 서부 아프리카의 그리오(griot)와 남부 아프리카의 임봉기(imbongi)들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종종 현악기로 음악을 연주하면서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전문적인 궁정 역사가들이 있었던 이러한 국가에서는 전통이 명확하고 정확히 말 그대로 낭송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는데, 그러한 전통은 “고정된(fixed)" 텍스트라 칭하여졌다.
세습 법률에 기반한 중심화된 정치 체제가 없는 사회를 포함하여 다른 사회에서는 구전 전통이 “자유로운(free)" 텍스트가 되는 경향을 띠었다. 여기서 전통은 전문가 계층의 관심사가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연장자나 주술사같은 사회의 전문가집단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사회 구성원 누구에 의해서나 표현될 수 있었다. 고정된 텍스트와 달리, 자유로운 텍스트는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되면서 정확히 말 그대로 낭송되지 않았다. 그들의 말하는 방식 속에는 말하는 사람의 개성이 어느 정도 반영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서부 아프리카의 그리오는 게웰(gewel), 가울로(gawlo), 잘리(jali), 젤리(jeli), 마보(mabo), 디젤리(djeli), 디엘리(dieli), 디젤리바(djeliba), 젤리야(juliya)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어지는데 구전으로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여 전해내려 온 구전역사가이며 이야기꾼(storyteller)으로 '이야기의 대가(Master of Word) ‘이야기의 대가’라는 말은 훌륭한 역사가로서 그리오의 역할을 묘사한 것이다.
'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오가 죽으면 “하나의 도서관이 불타 없어진다”
는 말처럼 아프리카 문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서부 아프리카에서 중앙집권적인 국가형태를 이룩한 말린케(Malinke), 밤바라(Bambara), 풀베(Fulbe), 월로프(Wolof), 투콜로르(Tukulóór), 그리고 소닌케(Soninke)왕국에서 존재하였다. 그들은 왕, 군사적 지도자, 귀족, 그리고 나중에는 이슬람 학자들의 중요한 수행원이었다. 그들의 사회적 임무와는 별도로 그들은 역사, 가계의 혈통의 수호자로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그 주요한 수단은 속담, 노래 그리고 음악이었다. 이들은 역사가이며, 음악가이며, 무용가이며 그리고 연기자로서 부족의 위대함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리오는 어린아이와 어른에게 왕의 법정을 만들어주는 상담자 역할이었다. 음악, 춤, 그리고 이야기 같은 공연예술을 사용하여 부족의 역사를 통하여 기억해야 할 부족과 세대 그리고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오늘날 고대 말리제국의 역사가 재조명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전문 사가이며 찬양시인이며 음악가인 만데족(만딩카(Mandinka), 만딩(Manding), 또는 말린케(Malinke)족으로 불리기도 한다)의 그리오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만데족은 말리, 기니아, 감비아, 세네갈, 코트 디브아르, 부르키나 파소, 그리고 기니비소등 서부 아프리카의 6개국에 분포하여 살고 있다. 만데족은 1468년 이후 하나의 정치적 통일체를 형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주목할만한 동일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그리오를 통해 그들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전해오고 있다. 모든 그리오들의 가장 소중한 역사는 말리 왕국의 첫 번째 왕인 순디아타 케이타(Sundiata Keita)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오는 역사가이고 찬양시인이며 음악가다. 그리도 아직까지 만데족 사회에서 이들의 유일무이한 위상을 정확히 정의할 수 있는 용어가 없다. 순디아타 시대에 그리오는 왕자들을 개인교습하였으며 왕에게 자문을 하였다. 그들은 교육받은 사람들이었으며 현명하였고 현재에 맞닥뜨린 문제들에 대해 역사적 지식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출생, 죽음, 결혼, 사냥, 계절 그리고 전쟁등 마을의 중요한 사건들에 관련된 집단적인 기억과 유산을 보존하는 사람으로서 부족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씨족의 혈통에 대해서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오는 몇 시간, 또는 하루종일 그리오에서 그리오로 전해내려 온 그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다. 1468년 말리제국이 무너진 이후에도 그들의 활동은 언제나 계속되어 논쟁을 중재하고 전통을 확인하며 조언을 하여왔다.
남부 아프리카의 코사족의 구전역사가도 그리오와 비슷한 기능을 하였다. 남부 아프리카에서는 구전 역사가로서 임봉기(imbongi)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지봉고(izibongo)라는 찬양시(praise poem)를 만들어 추장의 역사를 후세에 전해주는 전문가였다. 이들은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여 거의 모든 찬양시를 만들고 즉석에서 공연하였다(Opland 1998, 5).
임봉기는 추장의 궁정에 소속된 중요한 관리로서 찬양자의 이름(praise-names), 승리(victories), 그리고 그의 주인에 대한 찬양할 만한 특징들을 찾아서 기록하는 전문적인 구전역사가였다. 이러한 찬양들은 적을 패배시켰다든지 중요한 외교사절의 접대, 그리고 추장이 내리는 하사품의 분배같은 중요한 때에 행해졌다.
줄루 사회에서 임봉기의 작업은 추장에 대한 찬양을 수집하여 기록하고 전하는 것이다. 부족민들 누구나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찬양을 만들거나 말할 수 있지만 추장에 대한 찬양시를 만들고 공연하는 것은 구전역사가인 임봉기만이 할 수 있었다. 이러한 특별한 작업은 찬양시를 만드는 것 보다 전달(performance)이 더 중요했는데 창조적 작업보다 수집과 완벽한 전달이 더 중시되었다.
임봉기는 추장에 대하여 노래하는 공식적인 지위를 가진 음유시인으로서 역사적 사적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사건을 추장의 면전에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전달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청중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에 많은 구전 역사가들과 예술가들은 부유한 후원자 가족의 고객으로서 활동하였다. 그들의 중요한 일은 이러한 후원자들의 명성과 평판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르완다(Rwanda)의 왕궁에 있는 우무시지(umusizi)는 후원자 가족의 현재 구성원의 업적과 전설적인 과거를 칭찬한다. 이러한 부유층 집안의 힘과 위세를 공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그 집안 지도자의 지위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 남아프리카의 코사족과 줄루족의 임봉기는 지배자의 위세를 강화하는 것이 주요한 임무였다. 공식적인 행사에서 그는 왕족의 역사를 알렸다 몇몇 사회에서는 전통을 기억하고 전하는 일이 다른 개인 또는 전문가의 가족들에게 나누어졌다.
오늘날 후원자 가족 또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연하는 많은 구술예술가들이 있다. 식민지의 경제적 수탈 이후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과학기술 변화의 과정은 이러한 후원관계의 근본적인 부분을 손상시킴에 따라 구술예술가들의 일하는 환경도 변했다. 예술가들은 후원자의 물질적 지원으로부터 더 이상 가치를 두지 않았고 후원자들은 부와 정치적 영향력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렸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 지위, 역할, 그리고 많은 예술가들의 인식들을 심각하게 바꾸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적인 의견의 관리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도 변화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의사소통에서의 혁명과 과학기술은 항상 이러한 아프리카 구술문화의 손해를 보여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기니(Guinea), 세네갈(Senegal), 감비아(Gambia), 말리(Mali) 의 도시에서는 그리오들이 방송매체를 이용하여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그들의 노래와 역사적 이야기는 텔레비전과 국내, 국제적인 라디오 방송국에서 방송되었다. 그들의 공연은 카세트 테이프로 널리 퍼졌기 때문에 먼 시골 지역에까지도 퍼졌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예술가들 몇몇은 크게 성공한 팝가수가 되었고, 때때로 국제적 명성을 이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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