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로화와 세파프랑(CFA)
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가던 1944년의 유럽전역은 기근의 공포가 점점 커가는 가운데 사회 경제적인 황폐화가 극에 달했다. 그러나 UN의 후원과 미국의 거액의 경제지원에 힘입은 마샬계획을 통해 유럽은 황폐화된 경제를 빠른 속도로 재건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아프리카 국가들은 여전히 식민지배하에 있었고 대부분의 불어권 국가들은 식민국인 프랑스가 아프리카 자체 화폐의 통용을 정지시키려는 결정에 따라 프랑스의 프랑(Franc)을 통용화폐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경제에 큰 타격을 입은 프랑스는 1944년 6월 20일, 아프리카 국가들을 제외한 44개국이 창시한 새로운 브레튼 우즈 체제의 조인국으로서 미국 달러에 대해 프랑을 평가절하 하였다. 따라서 그 해에 프랑은 평가절하 이전에 달러에 50FF으로 거래되던 것이 119FF으로 재조정되었다.
2차 대전 중에 나치 독일 점령하에 들어간 프랑스는 구 식민지국들과 관계가 중단되었고 그에 대한 총체적인 지배권도 포기해야 했다. 프랑을 계속 사용하던 식민지국가들도 전쟁이 종결되면서 아시아와 남아메리카와 같은 세계의 다른 여러 지역들과도 무역을 시작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CFA란 무엇인가?
프랑스 프랑의 평가절하 이후 불어권국가에서 통용되던 화폐들도 역시 평가절하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을 때, 프랑스는 그 대신에 1945년 12월 26일에 프랑스령 아프리카 식민지 국가에 새로운 화폐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화폐 창안 당시 새 화폐는 프랑스령 아프리카 프랑(FCFA)으로 알려졌으나, 독립이후에는 아프리카 금융공동체(CFA)로 그 의미가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새롭게 만들어진 CFA는 평가절하되지 않고 오히려 과대평가 되었다. 새 화폐를 과대평가하기로 결정한 후 CFA 지대의 경제는 사실상 국제 시장의 외면을 받게 되었다. 이는 CFA 지대의 상품이 경쟁이 심한 세계 시장에서 지나치게 고가로 책정 되었기 때문이다.
CFA 지대에는 단 한 개의 시장만이 남게 되었는데 그것은 식민지배자인 프랑스라는 시장이었다. 이를 통해 프랑스는 전후 자구책과 신흥공업 육성에 필요했던 원료들을 손쉽게 얻어낼 수 있었다. 식민지들은 다른 시장들이 그들의 비싼 물품을 외면하게 되자 프랑스를 섬기기 위해 손발이 묶였다. 따라서 프랑스는 CFA 화폐 창안을 통해 전쟁의 결과로 단절되었던 아프리카 식민지들을 경제적으로 재식민지화 할 수 있었다.
EU가 얻는 이익
아그보호우에 따르면 유럽이 CFA-유로화 링크를 통해 별 이익을 얻을 수 없다면 그들은 CFA를 새로 출범한 유로화에 고정시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유럽에 주는 이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EU는 그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는 것이다. EU가 단계적으로 회원국 확대작업을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최초 확대작업은 폴란드, 체코 공화국, 슬로바니아, 헝가리부터 시작된다.
EU는 동구 유럽국가들이 기타 EU국들에 비해 경제력이 훨씬 약하다는 점과, 빠르게 성장하는 EU 경제에 부득이하게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EU에 가입하기 위해 필요한 엄격한 예산 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이웃국가이기에 EU는 지나친 파급효과를 남기며 동구 유럽국가에 상처를 남기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EU는 단계적인 확대작업 역시 각 그룹의 국가들이 경제적 조정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필요한 시간을 부여할 것이다. 그러나 동구 유럽국가들과 같이 약하거나 훨씬 심각한 수준의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CFA 지대는 EU의 금융 링크에 직접적으로 통합된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EU의 엄격한 재정 원칙을 장기적으로 지속시켜 나갈만한 능력이 부족할 뿐더러 훨씬 강한 통화가치를 가진 유로화에 보조를 맞추기도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공식적인 입장과는 달리 CFA가 언젠가는 평가절하된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그보호우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그동안 프랑스가 단독으로 재미를 봤던 것을 이제는 EU국가들까지 가세하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EU국가들은 CFA 지대의 경제적인 수준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을 뿐 아니라 CFA의 평가절하가 이루어지면 가치가 떨어진 CFA로 경제적인 이익을 챙길 수 있게 될 것이다.
프랑스는 1994년에 CFA를 평가절하했던 것처럼 더 이상 CFA에 대해 단독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되었고,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의 허가 없이 1유로=655.957 CFA로 고정된 현재 환율을 변동시키는 것을 포함해, CFA 운영체계를 변동시킬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그러한 권한을 프랑스로부터 물려받은 EU(유럽중앙은행을 통해서)가 가난한 CFA국가들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CFA 지대는 서부 아프리카 8개국(베냉, 부르키나파소, 코트디부아르, 기니비사우 공화국, 말리, 니제르, 세네갈, 토고)을 포함하는데 이들 국가들의 공용화폐(CFA)는 다카르(Dakar)에 소재하고 있는 서부아프리카국가 중앙은행(BCEAO)이 운영한다. 기타 국가들로는 중부 아프리카의 카메룬, 가봉, 차드, 적도 기니, 콩고,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이 있고, 이들 국가들에 대해서는 중부 아프리카국가 은행(BEAC)이 담당하고 있다. 코모로 이슬람 연방 공화국은 코모로 중앙 은행(BCC)이 맡고 있다.
다가올 위험
만약 동유럽에서 위조된 유로화 지폐나 동전이 유통되어 유로화 통용에 위험을 초래한다면 CFA 지대의 경제는 프랑스나 EU 동맹국들 자체로부터 위협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비평가들은 최근에 서부 아프리카에서 CFA 지폐가 위조되었다는 보고는 CFA 지대 국가들의 사기를 저하시켜 아프리카 단독 통화를 만드는 것을 저지하려는 세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국제 경제세력이 아프리카가 그에 가장 적합한 발전 모델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주력하고 있는 반면, 아프리카가 직면한 과제는 늘 방대하다. 너무나 방대해서 아프리카인들은 늘 그 앞에 사기가 저하된 채 굴복하고 만다.
만약 아프리카의 선조들이 자치를 위한 투쟁마저 포기했다면 오늘날 아프리카는 지금보다 더욱 무거운 사슬에 묶여 있었을 것이다. 단 한 가지 차이점은 오늘날 아프리카가 메여 있는 사슬은 보이지 않는 것이란 점이다. 어쩌면 그 때문에 더욱 위험한 것일는지 모른다.
아프리카는 다가올 세대들에게까지 물려줘야 할 지 모를 경제적 속박을 끓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 나라의 통화는 그 나라의 경제력을 말해준다. 달러를 언급할 때 미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유로화는 EU의 강한 경제력을 상징한다. 엔과 파운드가 일본과 영국의 경제력을 말해주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이러한 국가들의 유사점은 그들의 통화와 경제력이 모두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아프리카에서는 남아공의 랜드(Rand)를 제외하고는 강한 경제력의 뒷받침을 받는 통화가 없다. CFA는 인위적으로 높이 책정된 통화가치의 환상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의 경제력은 아프리카에서도 아주 약한 편에 속한다.
그들은 유럽중앙은행이 CFA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게 됨에 따라, 자신들의 약한 CFA를 유로화에 고정시킴으로써 사실상 경제적인 책임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아그보호우는 장기적으로 이 정책이 아주 위험한 정책으로 판명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황규득, 아프리카해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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