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의 남동쪽, 마스빙고(Masvingo)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작은 화강암 언덕이 평지로 둘러싸인 가운데 약 100m 정도의 높이로 가파르게 솟아있다. 꼭대기부터 언덕 남쪽까지 그레이트 짐바브웨(Great Zimbabwe)의 고대 쇼나(Shona) 문명의 유적인 거대한 화강암 벽이 세워져 있다.
짐바브웨와 모잠비크 일부, 그리고 남아프리카에 걸쳐 분포해 있는 그레이트 짐바브웨는 쇼나족의 왕들과 족장들을 위한 장소로서 200 여개의 비슷한 짐바브웨 도시석조 건축물들 중 가장 큰 규모이다. 쇼나 왕조가 1100년대 후반부터 이 인상적인 돌벽돌을 이용해 건축을 하기 시작했다. 이 건축양식은 1300년대와 1400년대 무렵 그레이트 짐바브웨의 궁전 내 건축물들을 완성함으로서 최고조에 다다르게 된다. 이 지역의 석조 건축물은 매우 장엄하여 오랫동안 일부에서는 토착 아프리카인들이 그 석조물들을 건축하였을 리가 없다고 믿었었다.
1. 부의 상징
12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약 400년 간 그레이트 짐바브웨 지역과 그 주변에서 발달했던 도시는 번성했던 쇼나 문명의 정치, 종교, 그리고 상업 중심지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레이트 짐바브웨의 건설을 가능하게 했던 쇼나 사람들의 엄청난 부는 농업, 광산 채굴, 그리고 무역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그들은 작물을 재배하고 소를 목축했으며 철, 구리, 금을 캐서 가공하였고, 또한 아프리카와 현재 모잠비크 일대 해안의 스와힐리(Swahili)의 항구들과 무역을 하였다. 이 해안의 항구들을 통해 그들은 금, 구리, 상아를 수출하였고 비단, 중국의 자기, 인도네시아와 인도 그리고 유럽으로부터는 유리구슬, 페르시아(현재의 이란)로부터 파이앙스(faience ; 유약으로 아름답게 채색한 빛이 나는 값비싼 도자기) 등을 수입하였다.
그레이트 짐바브웨의 화폐는 구리 잉고트(ingots ; 쇠막대)였다. 이러한 잉고트를 만들기 위한 동석 거푸집 주조장이 그레이트 짐바브웨에 세워졌고, 그 잉고트들은 멀리 떨어진 중국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2. 성벽과 건축물
그레이트 짐바브웨의 거대한 돌벽은, 직경이 9 m 이상이고 진흙 벽에 짚을 얹은 지붕의 원형 건물들을 둘러싸고 있다. 가장 큰 건물들은 대개 내부적으로는 각각의 방들이 구분 지어져 있고 6 m 높이의 지붕들로 이루어져 있다. 석조성벽들은 그 자체만으로 9 m 높이에 이르고 밑바닥이 5 m 두께로 만들어져 있다. 석조건물의 토대는 안정감 있게 잘 설계되었고 고르게 만들어진 해자 안쪽에 건설되어졌다.
이 돌벽은 그레이트 짐바브웨 유적들 중에서도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건축 작업은 110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고 약 300년간 계속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모든 벽들은 모르타르 없이 지어졌고 초기에 만들어진 부분은 손질하지 않은 돌들로 쌓여졌다. 후기에 지어진 부분은 잘 손질되어진 돌들과 아름다운 v자형 무늬의 띠 모양 장식이 특징이다.
벽들을 쌓는데 필요한 돌들을 구하기 위해서 쇼나의 석공들은 아마 그들이 처음으로 발견한 기술로 돌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들은 거석 또는 화강암의 노출 부분 주위에 화로들을 만들어서 불을 지펴 돌들에 열을 가한 다음, 차가운 물을 끼얹었다. 갑작스런 차가워짐으로 인해 돌들은 7.5 cm-17 cm 두께의 널빤지 모양으로 쪼개어 진다. 이 널빤지 모양의 돌들은 썰매로 건축 현장까지 옮겨져 돌망치와 철로 만들어진 끌로 작은 벽돌들로 잘려진다.
그레이트 짐바브웨 유적에 있는 거대한 원뿔형의 탑은 건축물로서나 초기 쇼나 사람들의 기술적인 성취도 면에 있어서 최고의 작품으로 간주된다. 원래 안이 빈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안이 채워져 있다고 밝혀졌다. 10 m 정도의 높이에 가장 두터운 밑바닥은 5 m 정도의 폭으로 되어 있다.
또한 그레이트 짐바브웨의 서쪽 옹벽에서 발견된 황소의 점토 작품은 11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된다.
3. 쇠퇴와 약탈
그레이트 짐바브웨는 쇼나의 왕이 그 지역을 포기하고 수도를 북쪽 잠베지강(the Zambezi River) 일대로 옮겼던 15 세기 중반에 들어서 정치 중심으로서의 중요성을 잃었다. 그곳은 오직 종교적이고 의식적인 장소로서만이 명맥이 이어졌다. 그레이트 짐바브웨는 거주민들이 줄루 음페카네/디파케인(Mfecane/Difaqune)으로부터 달아나는 응구니족(Nguni)들에 의해 쫓겨나고 포로로 잡히던 1830년대에 완전히 버려졌다.
응구니족은 그레이트 짐바브웨의 상당량의 보물들을 무시했거나 혹은 찾아내지 못했다. 19세기 후반에 그 잔해가 유럽인들에 의해 발견되었고, 묻혀있던 보물들은 도굴꾼들에 의해 약탈당했다. 값어치를 매길 수도 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금 세공품들의 거의 전부가 녹여져서 영원히 사라졌다.
'역사 > 아프리카 역사 100장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9. 날아다니는 네덜란드인(flying Dutchman)1)의 영원한 항해 (0) | 2008.07.28 |
---|---|
8. 그리쿠아(Griqua) (0) | 2008.07.28 |
6. 이집트 고왕국(Old Kingdom) (0) | 2008.07.28 |
4. 간추린 중부 아프리카 역사 (0) | 2008.07.28 |
5. 아프리카의 경제와 무역 (0) | 2008.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