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통과의례(通過儀禮 ; initiation rite, passage celebration, passage rite, puberty rite)
아프리카에서 통과의례는 젊은이들이 성숙한 인간으로서 또 책임 있는 존재로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공동체의 특권과 의무를 갖게되며 교육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들은 새로운 권리를 전수 받고 사회는 그들이 새로운 의무를 수행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성생활, 결혼, 자녀의 출산, 가족에 대한 책임 등에 대한 일들을 준비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기간동안 고통을 견디는 것을 배우고 서로 함께 사는 법을 배우며 순종하는 것을 배우고 남녀관계의 비밀과 신비를 배운다.
아프리카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성년이 되는 통과의례는 현대생활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년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가 개인의 삶이 지닌 전통적인 순환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는 곳에서는 여전히 그러한 관습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나이지리아의 오하피아(Ohafia)마을의 otumo 통과의식 : 12월의 뜨거운 여름날에 북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하나의 상징물이 나타난다. 라피아(Raffia) 야자 잎으로 둘러싸여 있는 상징물의 꼭대기는 잘 조각된 나무머리가 장식되어 있고 이 상징물은 마을을 지나가고 있다. 이것은 구체화된 하나의 정신이다. 짧은 loincloths(미개인들이 허리에 두르는 간단한 옷)를 입은 젊은 남자들이 그들의 몸을 하얀 분필로 칠하고 둘러싸고 있다. 이 남자들은 군중들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막대기를 휘두르고 있다.
이 상징물은 음악과 함께 흔들리며 노래가 불리어 진다. 잠시 후에 이 상징물은 남자들의 모임장소로 사라진다. 그때 거의 100여명의 여자들이 길로 행진하며 화답의 노래를 한다. 손에는 하얀 손수건이 쥐어져 있고 음악에 맞추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루종일 가장무도회, 노래, 춤은 모든 종류의 축하연이 계속된다.
통과의식은 특별한 연령집단이 그 사회에서 성인으로서 인정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남자와 여자는 그들의 나이에 맞게 연령집단에 소속되며 일생동안 연령집단의 구성원에 속한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들의 연령집단은 다양한 연령등급을 갖게된다. 가장 어린 등급은 길이나 시장을 청소하는 아주 작은 일을 한다. 만약 otumo의식을 치른 사람이라면 이 연령집단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책임 맡는다. 기금을 모으고 마을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사업에 노동력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멀리 떨어진 오지에 전기를 공급하고, 학교, 도서관 그리고 시장을 건설한다. 대개 40-50세가 되었을 때 그들은 이 otumo의식을 마친다. 이 의식을 마쳤을 때 최고의 연령등급(senior age grade)에 있는 사람들은 마을을 운영하는 책임이 있다. 그들이 더 나이가 들었을 때는 더 나이들은 연장자의 위치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들은 통치자가 된다. 연장자에 의한 통치는 아프리카의 마을 단위의 사회에서는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회는 노인정치, 연장자 정치(gerontocratic)로서 말해질 수 있다.
☞ 아캄바(Akamba)족의 통과의례 : 아캄바족의 통과의례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이전까지만 해도 누구나 두 번째까지의 과정은 거쳐야 했지만 세 번째 단계는 40세 이상의 남자들에게만 행하는데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이를 통과하였다.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으면 아캄바족의 완전한 성원이 될 수가 없다. 더욱이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를 먹고 몸이 큰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통과제의를 거치지 않는 한 그는 아직도 어린 소년이나 소녀라고 간주하고 멸시를 한다. 아이들은 4살에서 7살 사이에 통과의례의 첫 번째 단계를 거친다.
이 의식은 비교적 건조하고 서늘한 8월이나 9월에 행한다. 남자아이들에게는 할례를 행하고 여자아이들에게는 음핵절제를 행한다. 의례일자는 지역별로 공고가 되고 그날이 오면 모든 후보자들은 부모와 친척들과 함께 그 의식을 행하는 집으로 모여든다. 남자아이들에게는 남자 전문가가 할례를 하고 여자아이들에게는 여자 전문가가 음핵절제를 행한다. 그때에는 각기 특별한 칼을 사용한다. 그리고 육체를 베어내는 이 행위를 그들은 이른 아침에 행한다. 남자의 경우에는 성기의 포피를 잘라내고 여자의 경우에는 음핵의 일부를 잘라낸다. 남자들은 둥글게 모여서 남자아이의 의식을 주시하고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여자아이를 둘러싸고 그 의식을 관찰한다.
이 수술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사람들은 아이들이 울거나 소리치지 않고 이 아픔을 견디도록 둘레에서 격려를 해준다. 용감하게 이를 견디어낸 아이들은 공동체 전체가 높이 치하해 준다. 이 일이 끝나면 춤을 추고 노래하고 술을 마시고 살아있는 사자에게 헌작을 하고 제물을 바치면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긴다. 그 후 한 2주일이 지나면 상처가 치유되어 가는데 그때에는 친척들이 그 소년이나 소녀를 찾아와 그들에게 닭이나 돈이나 장신구, 심지어 양이나 소등, 자기네들이 마련할 수 있는 한 온갖 선물을 가져다준다.
이것이 통과의례의 첫 번째 단계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성기의 포 피를 잘라내는 것을 유년기로부터의 단절을 상징하고 극화하는 것이다. 이 행위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탯줄을 끊는 행위와 일치하는 현상이다. 할례 이전의 성기는 아이가 무지의 상태, 무활동의 상태, 잠재적인 불능의 상태(무성(無性)의 상태)에 종속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그러한 예속의 관계가 단절되면 그 젊은이는 무지와 무활동의 상태로부터 풀려나 자유스럽게 된다.
그는 다른 상태, 곧 지식과 활동과 출산의 단계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는 한 그는 결혼을 할 수도 없다. 아이를 낳거나 심지어 임신을 할 수도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피를 땅에다 흘리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땅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고, 그래서 땅에다 술을 부음으로서 비로소 그들에게 도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살아있는 사자와 아이와의 신비적인 결합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때 흐리는 피는 새로운 탄생을 위한 피인 것이다. 육체적인 고통을 주고 그것을 견디어 내도록 격려하는 것은 이후에 살아갈 동안 부닥칠 곤란과 고통을 감내하기 위한 훈련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캄바족은 무엇보다도 육체적인 고통이나 정서적인 아픔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단 아캄바족만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의 온갖 어려움에 둘러싸여 있어, 고통을 감내 해낸다고 하는 것은 아프리카인들 누구에게나 중요한 덕목이 되고 있다. 친척들이 수련자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은 그 젊은이들이 공동체에 전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을 환영하는 징표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러한 선물을 받음으로서 그 젊은이는 이제 자기 자신의 소유를 지닐 수 있게 되었음을 상징하고 보여주게 된다. 비록 개인의 소유가 전체 협동적인 집단과 함께 공유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나의 것이다"라고 우선 언표할 수 있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권리인 것이다. 이러한 재산의 소유를 거쳐 다음의 중요한 단계에 이르게 된다. 곧 결혼 기간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춤추고 함께 즐기는 행사는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해주고 전체 집단의 협동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젊은이는 첫 번째 통과의례를 거쳐야 비로소 이러한 공적인 춤의 잔치에 참여할 수가 있게 된다. 살아있는 사자에게 제물을 바치거나 헌작을 하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과 죽은 사람들과의 관계,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관계를 강조하고 또 새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통과의례를 거치기 전에 아이의 아버지가 사망했을 경우, 그 아이에게는 보통 다른 아이들보다 아주 늦게 통과의례를 시행해준다고 하는 사실이다. 왜 그렇게 하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통과의례가 젊은이에게 막중한 책임을 감당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른이 없는 집안의 일을 수행하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그 아이가 성숙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의례와 두 번째 의례 사이에 어떤 일정한 기간이 설정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대체로 두 번째 의례는 첫 번째 통과의례가 끝난 지 몇 주일 안에도 할 수 있고, 나이가 15세 가량 되었을 때 하기도 한다. 근본적으로 첫 번째 의례는 육체적인 것이고 두 번째 의례는 주로 교육적인 것이다.
두 번째 의식("위대한" 또는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라고 부른다)은 그때 마침 집안에 후보자가 없는 가정이 주관을 한다. 이 의식을 주관하는 일은 자기들의 살아있는 사자가 그 일을 자기들로 하여금 맡도록 허락해준 것이라고 생각해서 커다란 특권이라고 여긴다. 의식은 4일간에서 10일간까지 계속되기도 한다. 그 기간 동안에 얼마간을 후보자는 사람들과 격리되어 동네밖에 세워놓은 초막에서 지낸다. 그때 그 젊은이들에게 남성이나 여성됨의 모든 것을 가르쳐줄 책임을 지고 있는 고문 격인 사람들이 수련자인 젊은 사람들과 함께 동행한다.
아캄바족은 이러한 어른들의 임무를 마치 닭이 병아리를 깨기 위하여 알을 품는 것과 같다고 해서 "통과의례의 수련자들을 품에 안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첫째 날에 후보자들은 교훈적인 노래들을 배운다. 그리고 상징적인 장애물들과 부닥친다. 둘째 날에는 "음부샤(mbusya ; 코뿔소)라고 알려진 무서운 괴물과 만난다. 어떤 지역에서는 남자아이들만이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또 다른 지역에서는 남녀 모두가 이러한 과정을 겪게 하기도 한다. "음부샤"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나무토막과 나뭇가지들을 얽어 만든 것인데,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서 마치 커다란 괴물처럼 울부짖는다. 후보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른다. 이는 그 의례가 지니고 있는 비밀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의식이 끝난 뒤에도 아직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이 비밀을 절대로 누설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후보자들은 이 "음부샤"를 적을 대항하듯이 용감하게 활을 쏘면서 무찌르기 위해 대든다. 그 날 저녁에는 첫 번째 의례를 행한 남녀간에 제의 적인 성교를 행한다. 후보자의 부모들도 셋째 날, 그리고 일곱째 날에 역시 제의 적인 성교를 한다.
셋째 날에는 후보자들이 어른들의 생활을 연습한다. 남자들은 모의 활과 화살을 가지고 사냥을 하러가고, 여자들은 작은 나뭇가지들을 자른다(이것은 집에서 사용할 땔감(화목(火木))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날 늦게 첫 번째 통과의례 때에 수술을 담당했던 사람이 나와서 후보자에게 술을 붓고 축복을 해준다. 그리고 나면 아이들은 다시 수풀 속에 있는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돌아가면 많은 극복해야할 장애들이 마련되어 있다.
남자아이들에게는 특별한 지팡이 같은 나무토막을 하나씩 주는데 언제나 그것을 잃어버리지 말고 잘 지니고 다녀야 한다. 이 지팡이를 가지고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에게 상징적인 성행위를 한다. 다음 날에는 그 지팡이에 새겨져 있거나 모레 위에 그려져 있는 수수께끼나 알아맞히기의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그 후에는 남자들의 경우 사탕수수를 훔쳐오게 하는데, 이는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누구나 받아들이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허락된 "도둑질"이다. 그 사탕수수를 가지고 아이들은 의례를 주관하고 자기들을 돌보아주는 어른들을 위하여 술을 빗는다.
닷세째에는 후보자와 의례 주관자들이 함께 신성한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간다. 신성수(神聖樹)는 흔히 강변에 있는 야자수나 시카모르 나무이다. 주례자가 나무의 즙을 내가지고 이것을 후보자들에게 조금씩 나누어주면 후보자들은 그 즙을 먹는 척 한다. 이 의식을 거치고 나면 이전까지는 먹지 못하게 했던 어떤 음식들도 자유롭게 먹을 수 있게 한다. 또 이 나무 밑에서 수련자들의 성기에 작은 상처를 내고 그 상처에다 술을 붓기도 한다.
엿새째에는 아주 평화롭게 보낸다. 일곱째 날에는 남자들은 모의로 소를 약탈하기 위한 습격을 하고 여자아이들은 그때 적이 쳐들어왔다고 울부짖는다. 이러한 행사를 쟁점으로 해서 모든 의식이 끝나면 젊은 사람들은 마침내 제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부모들은 그날 제의 적인 성교를 한다.
너무 장황하게 서술이 된 것 같기는 하지만 통과의례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좀 상세한 묘사가 불가피한 것 같다. 이 의례를 통하여 분명히 떠오르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젊은이들은 수풀 속에 특별히 마련한 초옥에서 함께 살면서 이른바 "협동해서 산다"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그들의 생각 속에 깊이 집어넣을 수가 있다. 이곳에서 그들은 축소판 사회생활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다.
주례자는 나이가 많은 어른의 역할을 한다. 즉 자기의 친부모이거나 아니거나 간에 젊은이들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을 공경하는 것이야말로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그들을 격리시켜 수용하는 일은 후보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경험하고 행하는 것에 스스로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이 된다. 동시에 그러한 격리는 마치 죽음의 현실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이 의례는 젊은이들에게 개인적인 하나의 새로운 삶의 리듬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이 속해 있는 보다 광범위한 사회 전체에 있어서도 하나의 새로운 리듬이 되고 있다.
이 격리 기간이 끝나면 그 젊은이들은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남녀, 부모가 되고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자격을 갖출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그렇게 인정을 받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의적인 침략과 공격, 상징적 성행위 등이 그 의례의 중요한 일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코뿔소"로 꾸며 놀라게 하는 시련도 결국은 그 의례의 진지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동시에 후보자들로부터 두려움을 몰아냄으로서 위기가 닥칠 경우 달아나지 않고 그들 자신과 가족들을 용감하게 방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특별히 만든 나무토막에 새겨진 수수께끼나 모래 위에 그려진 그림을 풀이하는 일은 모두가 지식을 상징한다.
이 의례를 통하여 후보자들은 완전히 앎이라는 것에 가까이 가게 되는 것이다. 즉 수련자들은 이제까지 특정한 집단이 배타적으로 자기들끼리만 알던 모든 그 부족의 비밀한 삶과 지식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성수에서의 의례는 종교적인 삶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사자를 방문하는 것,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다고 믿어지는 영을 방문하는 상징적 행위인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의례는 과거와의 연계를 재생시키는 것, 곧 영적 실재와의 유대를 재현하는 것이고, 아울러 살아있는 사자는 그들과 함께 "현존"하고 있음을 깨우쳐주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먹지 못하도록 한 음식을 후보자들에게 먹어도 좋도록 허락하는 것은 공동체의 삶이 지닌 다양한 생활에 완전히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상징적이고 극적인 절차이다. 신성수 아래에서 성기에다 가벼운 상처를 내는 것은 신이 보는 데에서, 뭇 영들 앞에서, 살아 있는 사자와 인간들의 공동체 앞에서 성이 신성한 것임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그들이 집에 되돌아오는 것은 하나의 부활의 경험일 수밖에 없다. 죽음이 극복되고 격리가 끝나며, 이제는 새로운 남녀가 되어 그들 공동체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남녀로 사회는 그들을 받아들이고 또 존경한다.
이 모든 의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부모의 제의적 성교는 또한 그들의 자녀들이 다산다복(多産多福)하게 되었다는 것, 그들의 자녀들이 이제는 생명의 불꽃을 타오르게 했다는 것, 그리고 사회적인 의미에서나 교육적인 의미에서나 이제는 실제적으로 새로운 세대가 태어났다는 것을 상징하는 몸짓이다.
아캄바족의 남성의 경우는 40세가 넘으면 또 다른 세 번째 통과의례를 거친다. 실제적으로는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의례를 거치고 있고, 또 아주 그 내용이 절대적인 비밀이기 때문에 그 의례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은 일종의 제의적 신비경험과 같은 것으로, 실제적인 제의가 끝나면 그 제의를 어떻게 거쳤는가 하는데 따라 여러 등급이 주어진다. 여러 가지 행사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의례는 인내심을 시험해보는 가혹한 고통을 가하는 절차가 있다.
그러한 시련을 겪는 동안 수련자들은 자기 자신이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을 해낸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인식하지도 못한다. 그때 후보자들은 완전히 스스로를 "상실"하는 상태에 빠져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 의례는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비밀로 행해지는데, 비밀을 보장한다는 서약을 아주 엄격히 하기 때문에 후에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사람들조차도 그 의례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말하려고 하지 않을 정도이다.
☞ 마사이(Maasai)족의 통과의례 : 마사이족은 젊은이들이 12살이나 16살 될 때까지 4년 혹은 5년에 한 번씩 몇 차례 할례를 행한다. 그리고 함께 할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들끼리 모여 일생 동안 지속되는 동년배집단을 구성하고 새로운 특별한 이름을 갖는다. 이 의례의 준비로 우선 모든 입후보자들은 흰색 진흙을 온몸에 바르고,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은 채 함께 모인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두 달 동안 여러 지방을 옮겨다닌다. 의례가 행해지는 전날이 되면 소년들은 찬물에다 온몸을 씻는다.
그것이 끝나면 할례를 행하는데, 그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황소가죽에 담아서 각 소년의 머리 위에다 붓는다. 그 다음에는 나흘 동안 이들을 격리해두었다가 나흘이 끝나면 여자 옷을 입고, 흰 진흙을 얼굴에 바르고, 타조 깃털로 손을 장식한다. 한두 주일 후에 할례 받은 성기가 치유가 되면 그들은 머리를 삭발한다. 새머리가 자라면서 그들은 비로소 전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여자들의 경우에는 성기의 일부를 자르거나 뚫는다. 그들은 특정한 나무(죽은 야자수)의 잎이나 풀로 머리를 장식한다. 그리고 나서 상처가 다 치유되면 이제 결혼을 할 수가 있게 된다. 어떤 지역에서는 남자들처럼 여자들도 삭발하는 경우가 있다. 이 예에서도 우리는 아캄바족의 경우에서와 동일한 유형의 의미를 찾아볼 수가 있다. 이 의례의 바닥에 흐르는 강조는 다른 것이 아니고 유년기로부터의 단절과 성년에로의 결합이다. 성기를 단절하거나 뚫는 것, 머리를 깎는 것등은 모두 하나의 존재양태를 단절하고 다른 존재양태로 이입하는 것을 상징한다.
얼굴을 흰 진흙으로 얼룩지게 하는 것은 새로운 출생, 새로운 인간, 새로운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의례를 마치면 남자들은 하나의 전사로서의 생애를 시작하게 되고, 여자들은 결혼을 하게 되며, 때로는 그 의례가 끝나는 즉시 실제로 결혼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세대의 리듬은 극화되고 연출된다. 함께 통과의례를 겪은 사람들은 여생을 신비스러운, 그리고 제의 적인 유대관계를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사실상 그들은 한 몸이고, 한 집단이고, 한 공동체이며, 한 백성인 것이다. 그들은 온갖 일을 서로 돕고 살아간다.
한 사람의 아내는 같은 연령집단의 다른 남자들의 아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집을 방문하면 그 집의 남자는 그 찾아온 사람에게 자기 아내와 동침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그 남편이 집에 있든 없든 그것은 상관이 없다. 이것은 집단의 연대성을 긍정하는 깊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각 개인은 "나는 우리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즉 우리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있는 것이다"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연대성은 안정감, 일체감, 협동적인 실존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 등을 창조하고 제공한다.
☞ 난디(Nandi)족 여성의 통과의례 : 이 종족의 여성 통과의례는 어떤 종족의 경우보다 가장 빈틈없이 세세하게 짜여져 있다. 난디 여성 통과의례는 "성인이 되기 위한, 그리고 가정주부가 되기 위한 준비"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의례를 통과하지 않으면 어떤 여자도 결혼할 수가 없다. 통과의례를 행하기 훨씬 전에 소녀가 10세쯤 되면 그들은 시키로이노(sikiroino)라고 불리는 장소에서 남자들과 함께 잠을 잔다. 이것은 의무적인 것이어서 소녀가 거절을 할 경우, 남자아이들이 여자를 때려도 부모가 전혀 간섭을 하지 않는다.
이 의례는 여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남자들에 대해 행동할 것인가, 또 어떻게 자기들의 성욕을 제어할 것인가를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남녀가 함께 잠을 자기는 하지만 절대로 성교를 하도록 하지는 않는다. 후에 소녀들은 처녀성을 검사 받는데, 그들 중의 누구라도 처녀성을 잃은 것이 드러나면 그 소녀들 전체와 그들의 부모들은 커다란 수치로 느끼고 몹시 분개한다. 어떤 경우에는 처녀성을 잃은 소녀를 창으로 찔러 죽이고, 그렇지 않은 소녀들에게는 소나 양 등의 선물을 주기도 한다. 통과의례를 행할 때가 되면 여러 가족들이 자기 딸들을 데리고 나와서 함께 그 의례에 참여하게 된다.
대체로 소녀들이 그 의례를 위하여 잘 아름답게 차려 입도록 권고하고, "구슬로 만든 모자와 넓적 다리와 발목에다는 종(鐘)"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마련해 준다. 이렇게 무거운 차림을 하고 소녀들은 자기 친척들에게 돌아다니면서 의식을 행할 날짜를 알려준다. 넓적다리에다는 종은 한쪽에 4개씩 도합 8개를 다는데, 이것은 소녀들의 통과의례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표시가 된다. 정해진 의례일의 전날 저녁에는 소녀들이 남자 친구들과 함께 시키로이노에에서 잠을 잔다. 소녀들은 자연히 흥분을 감추지 못하게 된다. 이는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커다란 행사이기 때문이다.
"모든 고통과 두려움을 무시할 수 있고, 그 소녀들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에게 하는 일종의 광증 같은 것이 그들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상태야말로 그들이 어떻게 그처럼 어려운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고, 그 고통스러운 수술을 견디며, 자기를 지탱할 수 있는가를 설명해줄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된다."
의식이 있는 날 아침, 소녀들은 "스승"이나 "감독자"들과 함께 수풀 속에 들어가 나무를 한다. 그런데 나무를 베는 일을 하나의 의식으로 행한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승과 함께 도끼자루를 같이 쥐고 한 토막의 나무만을 자르는 것이다. 이 행위는 후보자들의 협동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고, 이러한 행사를 통하여 이미 그들은 서로가 하나의 몸, 하나의 집단임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때 같이 가는 스승을 모티리오트(motiriot, 복수일 경우에는 모티레니크(motirenik))라고 부르는데, 이 사람들은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가르쳐주며, 함께 잠을 자면서 의식이 다 끝날 때까지 언제나 후보자들과 같이 행동한다. 스승인 이 부인들은 그 후보자들의 일치의 상징이고, 상담자이며, 그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는 원천이 되고 있다.
의례를 준비하는 부인들이 의례를 행할 집안에다 쐐기풀을 마련하는 동안, 소녀들과 그들의 남자친구들은 함께 춤을 춘다. 이 춤은 밤늦게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이 춤이 끝나면 육체적인 의례가 시작된다. "여자가 앉으면 끈으로 음핵을 잡아맨다. 음핵의 출혈이 과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소녀들은 다시 한번 춤을 추며 뛰어 돌아다닌다. 이렇게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춘다. 모두 지쳐 쓰러지면 함께 모여 나이가 많은 어른이 나와서 스승들(motirenik)의 손이 능숙하고 가볍게 움직여 일이 효과적으로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그러면 모두가 "가볍게(wisis, 무겁지 않게)하고 되뇌면서 그 기도에 공감을 표현한다.
소년들은 소녀들을 향해 겁쟁이라고 소리를 치던가, 온갖 모욕적인 언사를 쓰면서 그들을 화가 나게 한다. 이 같은 행동은 소녀들의 용기와 기개를 자극시켜 실제 수술이 행해질 때 용기를 보여주기를 바라서 하는 것이다. 소녀들은 노래를 하고 호루라기를 불면서 자기네 남자 친구들이 오면 짐승가죽 위에서 자지 않고 그 친구들의 넓적다리 위에서 잠을 자겠노라고 대꾸한다. 소녀들은 넓적다리에 달린 종을 요란하게 흔들면서 "죽을 기를 쓰고 노래를 한다."
그날 밤늦게 남자들은 잠깐동안 잠을 자러 가고, 소녀들은 스승의 지시대로 수술하는 집에 들어가 쐐기풀로 음핵을 찌른다. 이렇게 하면 음핵은 무감각해지고 부풀게 된다. 그들의 젖가슴도 쐐기풀을 대어 찌른다. 쐐기풀은 대단히 아픈 것이어서 소녀들은 울부짖기도 한다. 그 소리를 누르기 위해 부인들은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다음 날 이른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의식을 행한 집 둘레에 모여 약 50미터나 100미터쯤 떨어져 둥글게 둘러선다. 의식에 참여했던 부인들은 그 안에서 그들 나름대로 원형으로 서고, 가운데에다 수술을 할 때 사용할 걸상을 놓는다. 그리고 수술 집행자는 구부러진 칼을 들고 선다. 그런 다음에 부인들은 소녀들의 처녀성 여부를 조사한다. 처녀인 소녀는 수술을 받기 위해 걸상 위에 앉고 처녀가 아닌 사람은 맨땅 위에 앉는다. 수련자는 아랫도리를 벗고 두 다리를 넓게 벌린 채 하늘을 쳐다본다. 수술자는 왼손으로 음핵을 잡고 오른손으로 재빨리 그것을 잘라낸다. 소녀들은 이 단계에서는 별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이미 쐐기풀 때문에 성기가 무감각해졌기 때문이다. 혈관이 잘 묶여지지 않은 경우(거의 그런 일은 없지만)를 제외하고는 별로 많은 피를 흘리지 않는다. 그것이 끝나면 다시 종을 넓적다리에 단다. 구경꾼들은 재빨리 달려가 누가 겁쟁이였고 누가 처녀였으며, 누가 처녀가 아니었는가 하는 것을 알린다.
이 순간이 통과의례에 참여한 소녀를 가진 가정이나 친척들에게는 가장 긴장된 순간이다. 만약 어떤 소녀가 겁쟁이라든가 처녀가 아니라고 알려지면 그 부모와 형제들은 스스로 죽어버리든가 그 소녀를 살해할 만큼 심각한 치욕으로 느낀다. 다른 사람들이 말려야 겨우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육체적인 수술을 행하는 의례가 모두 끝나면 소녀들은 가죽옷을 입고 넓적다리에 달아놓은 종을 격렬한 몸짓으로 흔든다. 소년들이 몰려와 그녀들을 축하해주고 자기들이 이 의례를 위하여 소녀들에게 마련해준 장신구와 옷을 찾아간다. 소녀들은 마침내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수련자들의 부모들은 넝쿨나무(시넨데트, sinendet)를 집으로 가져다가 집 문 앞에 두어 자기네 딸이 통과의례를 거쳤음을 나타낸다. 딸이 겁쟁이였음이 드러난 경우에는 그 넝쿨나무를 조금만 가져다가 태운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그 여자아이들과 그들을 도와주는 부인들은 일정기간동안을 격리된 상태에서 보낸다. 이 기간은 일종의 교육기간으로, 이때 자기네 부족이 지니고 있는 지식과 지혜를 배우게 된다.
수술을 하고 난 처음 4일 동안은 상처가 몹시 아프다. 그래서 원하든 원치 않든 소녀들에게 우유와 고기를 먹게 한다. 그 다음에는 통과의례가 끝날 때까지 나무로 된 수저(세케티크, seketik)를 가지고 음식을 먹는다. 그 기간 동안에는 그 수련자들이 종교적으로 부정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어떤 것도 건드릴 수 없게 한다. 또 만약 어떤 사람이 여자들의 상처를 건드리게 되면 그 의례의 주례자는 그 소녀를 심하게 때린다. 남자들은 절대로 이 소녀들을 보아서는 안되고, 소녀들은 저녁에나 이른 아침에밖에 나갈 때면 머리를 가리고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고 걷는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체로 집안에서 하루를 보낸다.
의례의 주재자나 스승들은 소녀들에게 집안 살림에 관한 일, 결혼에 관한 일 등을 가르쳐 준다. 예를 들면 남편과 어떻게 동침할 것인가, 임신한 때로부터 아이가 태어나 걸음을 걷기 시작할 때까지 어떻게 성생활을 억제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매력적인 아내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아이들을 기를 것인가 등을 배운다. 또 소녀들은 "올바른" 식사습관도 배운다. 예를 들면 고기와 우유를 같이 먹으면 안되고, 어린아이들에게는 꿀과 고기를 함께 먹이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벌들이 꿀통을 비어 버리기 때문이다.
날씨를 구별하는 법, 어떻게 해야 부지런하고 근면하게 될 수 있는가 하는 법, 빌려온 물건을 돌려줄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든가, 친절하고 공손하게 하는 법 등도 배운다. 그들이 받은 교육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이들의 양육에 관한 지식이다. 난디족의 남자들은 아이들이 10세쯤 될 때까지는 전혀 아이들을 건드리지도 않고 무엇을 하라고 이르지도 않는다. 때문에 모든 면에서 아이들은 여자들이 키운다. 그것이 여자들의 의무인 것이다. 출산을 하고 나면 산모는 부정하다고 해서 약 6개월 동안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심지어 남편을 위한 식사준비도 하지 못한다.
처음으로 젖을 먹일 때면 그 직전에 산모가 흐르는 강물에 가서 자기 몸을 씻고 두 손을 쳐든 채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와 자리에 앉으면 다른 사람이 아이를 안고 와서 산모의 무릎 위에다 내려놓는다. 그러면 산모는 아이에게 젖을 빨게 한다. 이러한 제반 규칙을 엄격히 지키지 않으면 산모에게 큰 슬픔이 닥쳐올 수도 있고 심지어는 산모가 죽게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격리되어 있는 교육기간 동안에 "소녀는 서서히 여성으로서의 삶의 모습을 천을 짜듯 엮어나가게 되고,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성인의 것으로 바뀌어가게 된다. 이전의 자기를 잊어버리고 스스로의 과거를 관조할 수 있게 된다. 그녀는 삶 속에서 자기가 참으로 속해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동안 소녀는 잘 먹는다. 대부분의 경우 "영양과잉이 될 정도로 잘 먹는다." 이렇게 해서 격리 기간이 다 끝나면 "소녀들은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몸이 커지고 살이 찐다. 마음도 몸도 정신도 완전히 변화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이제는 가사를 돌 볼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기고 자기들 공동체 안에서의 자기 몫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관찰해보면 이러한 통과의례의 수행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관습에 대한 기독교 선교사들의 공격은 실제에 있어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도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처녀들과 결혼을 하게 되면 비밀하게 그 의례를 거치도록 한다. 또 부모들도 비록 딸의 통과의례를 공개적으로 시행할 만한 용기는 없다 할 지라도 역시 비밀로 이 의례를 행한다. 사람들은 소녀가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으면 음핵이 길게 자라고 가지가 뻗는다고 믿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여인의 자녀들은 비정상적이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여인은 아직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그 여인이 낳은 아이는 "어린아이의 아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정황을 염두에 둔다면 통과의례를 행하는 심리적인 중요성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의례를 행하지 않는 여인은 참으로 "그 어느 누구"일 수도 없고 "불완전한 인간"이며, 아직도 "어린아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함께 사는 협동적인 실존의 분위기 속에서는, 따라서 어떤 사람이 그러한 의례에 참여하는 것을 회피한다던가 피해 달아난다던가 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러한 여인은 조만간 그 가족이나 이웃의 조롱거리가 되고, 그녀에게 어떠한 불행한 일이 닥치게 되면 제의적 성숙의 "고리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격리기간이 끝나고 통과의례를 모두 마치면 곧 소녀들은 결혼을 한다. 그들이 격리되어 있는 동안 집안에서는 남자 친구들의 집안과 결혼에 대하여 의논을 하고 혼인약속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의례에 참여하지 않은 여자는 결혼을 하지 않고 일생을 보내던가, 결혼을 하더라도 비정상적인 아이를 잉태할 거라고 하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현대의 생활이 이러한 태도나 실천에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사실이다.
비록 난디족의 여성 통과의례의 자세한 국면들이 다른 종족들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의례의 근본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다. 즉 의례가 성숙을 위한 의례라는 점, 그래서 어린아이임을 단절하고 어른에로 결합되는 것을 극화한 의례라는 접은 동일하다. 성기는 생명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성기를 상처 내는 것은 생명의 분출을 열어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열어놓아야 비로소 막히지 않고 생명이 흘러나올 수 있는 것이다. 격리는 죽음의 상징이다.
그것은 마치 씨앗을 땅속에다 묻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의례를 끝내는 것은 새롭고 책임 있는 생명으로의 부활, 곧 새싹의 돋아남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자아이나 여자아이들의 통과의례를 통하여 그들이 속한 전체 종족의 협동적인 삶 자체가 다시 소생하게 된다. 그 공동체의 삶의 리듬에다 새로운 진동의 계기를 마련해주고, 그 공동체의 생명력이 되살아나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의례를 거절하는 사람이나 그 의례의 조화를 망치는 사람(처녀가 아니라든지 겁쟁이라든지 해서)은 전체 난디족의 사회에 심각한 반역을 범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여인은 공동체 전체를 멸망시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렇게 보면 부끄러움을 당한 딸이나 누이의 부모들이나 가족이 자살을 하려 한다든지, 그 소녀를 전체의 공동체적 실존을 위하여 죽여야 한다든지 하는 생각을 하게되는 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 이 의례는 깊은 차원에서부터 솟아난 심원하게 거룩한 제의이다. 이 제의에 종족 전체의 사활의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의례는 죽음과 와해의 극복 및 정복을 종교적으로 극화한 것이다.
☞ 은데벨레(Ndebele)족의 사춘기 의식(puberty rite) : 은데벨레족은 형식화된 통과의례 대신에 성숙기의 변화를 표현하는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의식을 행하고 있다. 남자아이의 경우를 보면 최초로 몽정을 한 다음 날,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일찍 일어나 벌거벗고 강에 가서 몸을 씻는다. 그리고 나서 집에 돌아와 가축의 우리에 이르는 출입구 가까이의 집 밖 모퉁이에 서 있는다. 그러면 그것을 본 다른 소년들이 몰려나와 장대로 그 아이를 때려준다. 그 소년은 숲으로 달아난다. 그리고 거기에서 2, 3일간 머문다.
그 동안 다른 소년들은 그를 조심스럽게 지켜본다. 그 며칠 동안 그 소년은 낮 동안에는 결코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 다만 밤에만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 기간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서 전통적인 주의가 마련해준 약이 섞인 음식을 먹는데, 이 일은 하나의 의식으로 행해진다. 즉 주의가 장대 끝에다 옥수수로 된 음식을 놓고 이것을 그 소년의 입에다 틀어넣으면 그 아이는 그 막대를 입에 꼭 물고 그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잘 하면 주의는 그 막대를 가지고 그 아이를 세 번 혹은 네 번 내려친다. 이러한 매질은 그 아이를 단단하게 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이 일이 끝나면 그 아이의 아버지와 친척들이 몰려와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그 아이에게 선물로 준다. 여자아이들의 경우에는 첫 번째 월경을 한 다음 오랫동안 찬물에서 몸을 씻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그녀의 부모들은 커다란 잔치를 베푸는데, 이 잔치가 끝나면 소녀들은 긴치마를 입기 시작한다. 긴치마를 입는 것은 이제 그 여자아이들이 결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며칠 동안을 수풀 속에서 보내는 것은 역시 "죽음과 부활"의 관념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유년기를 단절하는 행위는 몸을 씻는 일로 극화된다. 이 제의 적인 목욕은 동시에 비생산적인 삶의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보다 깊은 종교적 정화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또한 이 의식은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 즉 결혼, 재산의 소유, 책임지는 행위(아이들은 "단단하게"하기 위하여 매를 때리는 일을 참고할 것)등의 준비를 극화한 것이다. "단단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인간이 이제는 모든 특권과 의무를 지고 보다 넓은 사회에 완전히 협동적으로 참여하게 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며, 그러한 자질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통과의례는 젊은이들이 성숙한 인간으로서 또 책임 있는 존재로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공동체의 특권과 의무를 갖게되며 교육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들은 새로운 권리를 전수 받고 사회는 그들이 새로운 의무를 수행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성생활, 결혼, 자녀의 출산, 가족에 대한 책임 등에 대한 일들을 준비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기간동안 고통을 견디는 것을 배우고 서로 함께 사는 법을 배우며 순종하는 것을 배우고 남녀관계의 비밀과 신비를 배운다.
아프리카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성년이 되는 통과의례는 현대생활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년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가 개인의 삶이 지닌 전통적인 순환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는 곳에서는 여전히 그러한 관습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나이지리아의 오하피아(Ohafia)마을의 otumo 통과의식 : 12월의 뜨거운 여름날에 북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하나의 상징물이 나타난다. 라피아(Raffia) 야자 잎으로 둘러싸여 있는 상징물의 꼭대기는 잘 조각된 나무머리가 장식되어 있고 이 상징물은 마을을 지나가고 있다. 이것은 구체화된 하나의 정신이다. 짧은 loincloths(미개인들이 허리에 두르는 간단한 옷)를 입은 젊은 남자들이 그들의 몸을 하얀 분필로 칠하고 둘러싸고 있다. 이 남자들은 군중들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막대기를 휘두르고 있다.
이 상징물은 음악과 함께 흔들리며 노래가 불리어 진다. 잠시 후에 이 상징물은 남자들의 모임장소로 사라진다. 그때 거의 100여명의 여자들이 길로 행진하며 화답의 노래를 한다. 손에는 하얀 손수건이 쥐어져 있고 음악에 맞추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루종일 가장무도회, 노래, 춤은 모든 종류의 축하연이 계속된다.
통과의식은 특별한 연령집단이 그 사회에서 성인으로서 인정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남자와 여자는 그들의 나이에 맞게 연령집단에 소속되며 일생동안 연령집단의 구성원에 속한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들의 연령집단은 다양한 연령등급을 갖게된다. 가장 어린 등급은 길이나 시장을 청소하는 아주 작은 일을 한다. 만약 otumo의식을 치른 사람이라면 이 연령집단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책임 맡는다. 기금을 모으고 마을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사업에 노동력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멀리 떨어진 오지에 전기를 공급하고, 학교, 도서관 그리고 시장을 건설한다. 대개 40-50세가 되었을 때 그들은 이 otumo의식을 마친다. 이 의식을 마쳤을 때 최고의 연령등급(senior age grade)에 있는 사람들은 마을을 운영하는 책임이 있다. 그들이 더 나이가 들었을 때는 더 나이들은 연장자의 위치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들은 통치자가 된다. 연장자에 의한 통치는 아프리카의 마을 단위의 사회에서는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회는 노인정치, 연장자 정치(gerontocratic)로서 말해질 수 있다.
☞ 아캄바(Akamba)족의 통과의례 : 아캄바족의 통과의례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이전까지만 해도 누구나 두 번째까지의 과정은 거쳐야 했지만 세 번째 단계는 40세 이상의 남자들에게만 행하는데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이를 통과하였다.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으면 아캄바족의 완전한 성원이 될 수가 없다. 더욱이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를 먹고 몸이 큰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통과제의를 거치지 않는 한 그는 아직도 어린 소년이나 소녀라고 간주하고 멸시를 한다. 아이들은 4살에서 7살 사이에 통과의례의 첫 번째 단계를 거친다.
이 의식은 비교적 건조하고 서늘한 8월이나 9월에 행한다. 남자아이들에게는 할례를 행하고 여자아이들에게는 음핵절제를 행한다. 의례일자는 지역별로 공고가 되고 그날이 오면 모든 후보자들은 부모와 친척들과 함께 그 의식을 행하는 집으로 모여든다. 남자아이들에게는 남자 전문가가 할례를 하고 여자아이들에게는 여자 전문가가 음핵절제를 행한다. 그때에는 각기 특별한 칼을 사용한다. 그리고 육체를 베어내는 이 행위를 그들은 이른 아침에 행한다. 남자의 경우에는 성기의 포피를 잘라내고 여자의 경우에는 음핵의 일부를 잘라낸다. 남자들은 둥글게 모여서 남자아이의 의식을 주시하고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여자아이를 둘러싸고 그 의식을 관찰한다.
이 수술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사람들은 아이들이 울거나 소리치지 않고 이 아픔을 견디도록 둘레에서 격려를 해준다. 용감하게 이를 견디어낸 아이들은 공동체 전체가 높이 치하해 준다. 이 일이 끝나면 춤을 추고 노래하고 술을 마시고 살아있는 사자에게 헌작을 하고 제물을 바치면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긴다. 그 후 한 2주일이 지나면 상처가 치유되어 가는데 그때에는 친척들이 그 소년이나 소녀를 찾아와 그들에게 닭이나 돈이나 장신구, 심지어 양이나 소등, 자기네들이 마련할 수 있는 한 온갖 선물을 가져다준다.
이것이 통과의례의 첫 번째 단계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성기의 포 피를 잘라내는 것을 유년기로부터의 단절을 상징하고 극화하는 것이다. 이 행위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탯줄을 끊는 행위와 일치하는 현상이다. 할례 이전의 성기는 아이가 무지의 상태, 무활동의 상태, 잠재적인 불능의 상태(무성(無性)의 상태)에 종속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그러한 예속의 관계가 단절되면 그 젊은이는 무지와 무활동의 상태로부터 풀려나 자유스럽게 된다.
그는 다른 상태, 곧 지식과 활동과 출산의 단계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는 한 그는 결혼을 할 수도 없다. 아이를 낳거나 심지어 임신을 할 수도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피를 땅에다 흘리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땅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고, 그래서 땅에다 술을 부음으로서 비로소 그들에게 도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살아있는 사자와 아이와의 신비적인 결합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때 흐리는 피는 새로운 탄생을 위한 피인 것이다. 육체적인 고통을 주고 그것을 견디어 내도록 격려하는 것은 이후에 살아갈 동안 부닥칠 곤란과 고통을 감내하기 위한 훈련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캄바족은 무엇보다도 육체적인 고통이나 정서적인 아픔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단 아캄바족만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의 온갖 어려움에 둘러싸여 있어, 고통을 감내 해낸다고 하는 것은 아프리카인들 누구에게나 중요한 덕목이 되고 있다. 친척들이 수련자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은 그 젊은이들이 공동체에 전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을 환영하는 징표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러한 선물을 받음으로서 그 젊은이는 이제 자기 자신의 소유를 지닐 수 있게 되었음을 상징하고 보여주게 된다. 비록 개인의 소유가 전체 협동적인 집단과 함께 공유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나의 것이다"라고 우선 언표할 수 있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권리인 것이다. 이러한 재산의 소유를 거쳐 다음의 중요한 단계에 이르게 된다. 곧 결혼 기간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춤추고 함께 즐기는 행사는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해주고 전체 집단의 협동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젊은이는 첫 번째 통과의례를 거쳐야 비로소 이러한 공적인 춤의 잔치에 참여할 수가 있게 된다. 살아있는 사자에게 제물을 바치거나 헌작을 하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과 죽은 사람들과의 관계,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관계를 강조하고 또 새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통과의례를 거치기 전에 아이의 아버지가 사망했을 경우, 그 아이에게는 보통 다른 아이들보다 아주 늦게 통과의례를 시행해준다고 하는 사실이다. 왜 그렇게 하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통과의례가 젊은이에게 막중한 책임을 감당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른이 없는 집안의 일을 수행하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그 아이가 성숙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의례와 두 번째 의례 사이에 어떤 일정한 기간이 설정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대체로 두 번째 의례는 첫 번째 통과의례가 끝난 지 몇 주일 안에도 할 수 있고, 나이가 15세 가량 되었을 때 하기도 한다. 근본적으로 첫 번째 의례는 육체적인 것이고 두 번째 의례는 주로 교육적인 것이다.
두 번째 의식("위대한" 또는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라고 부른다)은 그때 마침 집안에 후보자가 없는 가정이 주관을 한다. 이 의식을 주관하는 일은 자기들의 살아있는 사자가 그 일을 자기들로 하여금 맡도록 허락해준 것이라고 생각해서 커다란 특권이라고 여긴다. 의식은 4일간에서 10일간까지 계속되기도 한다. 그 기간 동안에 얼마간을 후보자는 사람들과 격리되어 동네밖에 세워놓은 초막에서 지낸다. 그때 그 젊은이들에게 남성이나 여성됨의 모든 것을 가르쳐줄 책임을 지고 있는 고문 격인 사람들이 수련자인 젊은 사람들과 함께 동행한다.
아캄바족은 이러한 어른들의 임무를 마치 닭이 병아리를 깨기 위하여 알을 품는 것과 같다고 해서 "통과의례의 수련자들을 품에 안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첫째 날에 후보자들은 교훈적인 노래들을 배운다. 그리고 상징적인 장애물들과 부닥친다. 둘째 날에는 "음부샤(mbusya ; 코뿔소)라고 알려진 무서운 괴물과 만난다. 어떤 지역에서는 남자아이들만이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또 다른 지역에서는 남녀 모두가 이러한 과정을 겪게 하기도 한다. "음부샤"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나무토막과 나뭇가지들을 얽어 만든 것인데,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서 마치 커다란 괴물처럼 울부짖는다. 후보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른다. 이는 그 의례가 지니고 있는 비밀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의식이 끝난 뒤에도 아직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이 비밀을 절대로 누설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후보자들은 이 "음부샤"를 적을 대항하듯이 용감하게 활을 쏘면서 무찌르기 위해 대든다. 그 날 저녁에는 첫 번째 의례를 행한 남녀간에 제의 적인 성교를 행한다. 후보자의 부모들도 셋째 날, 그리고 일곱째 날에 역시 제의 적인 성교를 한다.
셋째 날에는 후보자들이 어른들의 생활을 연습한다. 남자들은 모의 활과 화살을 가지고 사냥을 하러가고, 여자들은 작은 나뭇가지들을 자른다(이것은 집에서 사용할 땔감(화목(火木))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날 늦게 첫 번째 통과의례 때에 수술을 담당했던 사람이 나와서 후보자에게 술을 붓고 축복을 해준다. 그리고 나면 아이들은 다시 수풀 속에 있는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돌아가면 많은 극복해야할 장애들이 마련되어 있다.
남자아이들에게는 특별한 지팡이 같은 나무토막을 하나씩 주는데 언제나 그것을 잃어버리지 말고 잘 지니고 다녀야 한다. 이 지팡이를 가지고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에게 상징적인 성행위를 한다. 다음 날에는 그 지팡이에 새겨져 있거나 모레 위에 그려져 있는 수수께끼나 알아맞히기의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그 후에는 남자들의 경우 사탕수수를 훔쳐오게 하는데, 이는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누구나 받아들이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허락된 "도둑질"이다. 그 사탕수수를 가지고 아이들은 의례를 주관하고 자기들을 돌보아주는 어른들을 위하여 술을 빗는다.
닷세째에는 후보자와 의례 주관자들이 함께 신성한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간다. 신성수(神聖樹)는 흔히 강변에 있는 야자수나 시카모르 나무이다. 주례자가 나무의 즙을 내가지고 이것을 후보자들에게 조금씩 나누어주면 후보자들은 그 즙을 먹는 척 한다. 이 의식을 거치고 나면 이전까지는 먹지 못하게 했던 어떤 음식들도 자유롭게 먹을 수 있게 한다. 또 이 나무 밑에서 수련자들의 성기에 작은 상처를 내고 그 상처에다 술을 붓기도 한다.
엿새째에는 아주 평화롭게 보낸다. 일곱째 날에는 남자들은 모의로 소를 약탈하기 위한 습격을 하고 여자아이들은 그때 적이 쳐들어왔다고 울부짖는다. 이러한 행사를 쟁점으로 해서 모든 의식이 끝나면 젊은 사람들은 마침내 제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부모들은 그날 제의 적인 성교를 한다.
너무 장황하게 서술이 된 것 같기는 하지만 통과의례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좀 상세한 묘사가 불가피한 것 같다. 이 의례를 통하여 분명히 떠오르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젊은이들은 수풀 속에 특별히 마련한 초옥에서 함께 살면서 이른바 "협동해서 산다"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그들의 생각 속에 깊이 집어넣을 수가 있다. 이곳에서 그들은 축소판 사회생활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다.
주례자는 나이가 많은 어른의 역할을 한다. 즉 자기의 친부모이거나 아니거나 간에 젊은이들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을 공경하는 것이야말로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그들을 격리시켜 수용하는 일은 후보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경험하고 행하는 것에 스스로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이 된다. 동시에 그러한 격리는 마치 죽음의 현실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이 의례는 젊은이들에게 개인적인 하나의 새로운 삶의 리듬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이 속해 있는 보다 광범위한 사회 전체에 있어서도 하나의 새로운 리듬이 되고 있다.
이 격리 기간이 끝나면 그 젊은이들은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남녀, 부모가 되고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자격을 갖출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그렇게 인정을 받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의적인 침략과 공격, 상징적 성행위 등이 그 의례의 중요한 일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코뿔소"로 꾸며 놀라게 하는 시련도 결국은 그 의례의 진지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동시에 후보자들로부터 두려움을 몰아냄으로서 위기가 닥칠 경우 달아나지 않고 그들 자신과 가족들을 용감하게 방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특별히 만든 나무토막에 새겨진 수수께끼나 모래 위에 그려진 그림을 풀이하는 일은 모두가 지식을 상징한다.
이 의례를 통하여 후보자들은 완전히 앎이라는 것에 가까이 가게 되는 것이다. 즉 수련자들은 이제까지 특정한 집단이 배타적으로 자기들끼리만 알던 모든 그 부족의 비밀한 삶과 지식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성수에서의 의례는 종교적인 삶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사자를 방문하는 것,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다고 믿어지는 영을 방문하는 상징적 행위인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의례는 과거와의 연계를 재생시키는 것, 곧 영적 실재와의 유대를 재현하는 것이고, 아울러 살아있는 사자는 그들과 함께 "현존"하고 있음을 깨우쳐주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먹지 못하도록 한 음식을 후보자들에게 먹어도 좋도록 허락하는 것은 공동체의 삶이 지닌 다양한 생활에 완전히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상징적이고 극적인 절차이다. 신성수 아래에서 성기에다 가벼운 상처를 내는 것은 신이 보는 데에서, 뭇 영들 앞에서, 살아 있는 사자와 인간들의 공동체 앞에서 성이 신성한 것임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그들이 집에 되돌아오는 것은 하나의 부활의 경험일 수밖에 없다. 죽음이 극복되고 격리가 끝나며, 이제는 새로운 남녀가 되어 그들 공동체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남녀로 사회는 그들을 받아들이고 또 존경한다.
이 모든 의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부모의 제의적 성교는 또한 그들의 자녀들이 다산다복(多産多福)하게 되었다는 것, 그들의 자녀들이 이제는 생명의 불꽃을 타오르게 했다는 것, 그리고 사회적인 의미에서나 교육적인 의미에서나 이제는 실제적으로 새로운 세대가 태어났다는 것을 상징하는 몸짓이다.
아캄바족의 남성의 경우는 40세가 넘으면 또 다른 세 번째 통과의례를 거친다. 실제적으로는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의례를 거치고 있고, 또 아주 그 내용이 절대적인 비밀이기 때문에 그 의례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은 일종의 제의적 신비경험과 같은 것으로, 실제적인 제의가 끝나면 그 제의를 어떻게 거쳤는가 하는데 따라 여러 등급이 주어진다. 여러 가지 행사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의례는 인내심을 시험해보는 가혹한 고통을 가하는 절차가 있다.
그러한 시련을 겪는 동안 수련자들은 자기 자신이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을 해낸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인식하지도 못한다. 그때 후보자들은 완전히 스스로를 "상실"하는 상태에 빠져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 의례는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비밀로 행해지는데, 비밀을 보장한다는 서약을 아주 엄격히 하기 때문에 후에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사람들조차도 그 의례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말하려고 하지 않을 정도이다.
☞ 마사이(Maasai)족의 통과의례 : 마사이족은 젊은이들이 12살이나 16살 될 때까지 4년 혹은 5년에 한 번씩 몇 차례 할례를 행한다. 그리고 함께 할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들끼리 모여 일생 동안 지속되는 동년배집단을 구성하고 새로운 특별한 이름을 갖는다. 이 의례의 준비로 우선 모든 입후보자들은 흰색 진흙을 온몸에 바르고,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은 채 함께 모인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두 달 동안 여러 지방을 옮겨다닌다. 의례가 행해지는 전날이 되면 소년들은 찬물에다 온몸을 씻는다.
그것이 끝나면 할례를 행하는데, 그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황소가죽에 담아서 각 소년의 머리 위에다 붓는다. 그 다음에는 나흘 동안 이들을 격리해두었다가 나흘이 끝나면 여자 옷을 입고, 흰 진흙을 얼굴에 바르고, 타조 깃털로 손을 장식한다. 한두 주일 후에 할례 받은 성기가 치유가 되면 그들은 머리를 삭발한다. 새머리가 자라면서 그들은 비로소 전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여자들의 경우에는 성기의 일부를 자르거나 뚫는다. 그들은 특정한 나무(죽은 야자수)의 잎이나 풀로 머리를 장식한다. 그리고 나서 상처가 다 치유되면 이제 결혼을 할 수가 있게 된다. 어떤 지역에서는 남자들처럼 여자들도 삭발하는 경우가 있다. 이 예에서도 우리는 아캄바족의 경우에서와 동일한 유형의 의미를 찾아볼 수가 있다. 이 의례의 바닥에 흐르는 강조는 다른 것이 아니고 유년기로부터의 단절과 성년에로의 결합이다. 성기를 단절하거나 뚫는 것, 머리를 깎는 것등은 모두 하나의 존재양태를 단절하고 다른 존재양태로 이입하는 것을 상징한다.
얼굴을 흰 진흙으로 얼룩지게 하는 것은 새로운 출생, 새로운 인간, 새로운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의례를 마치면 남자들은 하나의 전사로서의 생애를 시작하게 되고, 여자들은 결혼을 하게 되며, 때로는 그 의례가 끝나는 즉시 실제로 결혼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세대의 리듬은 극화되고 연출된다. 함께 통과의례를 겪은 사람들은 여생을 신비스러운, 그리고 제의 적인 유대관계를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사실상 그들은 한 몸이고, 한 집단이고, 한 공동체이며, 한 백성인 것이다. 그들은 온갖 일을 서로 돕고 살아간다.
한 사람의 아내는 같은 연령집단의 다른 남자들의 아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집을 방문하면 그 집의 남자는 그 찾아온 사람에게 자기 아내와 동침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그 남편이 집에 있든 없든 그것은 상관이 없다. 이것은 집단의 연대성을 긍정하는 깊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각 개인은 "나는 우리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즉 우리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있는 것이다"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연대성은 안정감, 일체감, 협동적인 실존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 등을 창조하고 제공한다.
☞ 난디(Nandi)족 여성의 통과의례 : 이 종족의 여성 통과의례는 어떤 종족의 경우보다 가장 빈틈없이 세세하게 짜여져 있다. 난디 여성 통과의례는 "성인이 되기 위한, 그리고 가정주부가 되기 위한 준비"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의례를 통과하지 않으면 어떤 여자도 결혼할 수가 없다. 통과의례를 행하기 훨씬 전에 소녀가 10세쯤 되면 그들은 시키로이노(sikiroino)라고 불리는 장소에서 남자들과 함께 잠을 잔다. 이것은 의무적인 것이어서 소녀가 거절을 할 경우, 남자아이들이 여자를 때려도 부모가 전혀 간섭을 하지 않는다.
이 의례는 여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남자들에 대해 행동할 것인가, 또 어떻게 자기들의 성욕을 제어할 것인가를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남녀가 함께 잠을 자기는 하지만 절대로 성교를 하도록 하지는 않는다. 후에 소녀들은 처녀성을 검사 받는데, 그들 중의 누구라도 처녀성을 잃은 것이 드러나면 그 소녀들 전체와 그들의 부모들은 커다란 수치로 느끼고 몹시 분개한다. 어떤 경우에는 처녀성을 잃은 소녀를 창으로 찔러 죽이고, 그렇지 않은 소녀들에게는 소나 양 등의 선물을 주기도 한다. 통과의례를 행할 때가 되면 여러 가족들이 자기 딸들을 데리고 나와서 함께 그 의례에 참여하게 된다.
대체로 소녀들이 그 의례를 위하여 잘 아름답게 차려 입도록 권고하고, "구슬로 만든 모자와 넓적 다리와 발목에다는 종(鐘)"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마련해 준다. 이렇게 무거운 차림을 하고 소녀들은 자기 친척들에게 돌아다니면서 의식을 행할 날짜를 알려준다. 넓적다리에다는 종은 한쪽에 4개씩 도합 8개를 다는데, 이것은 소녀들의 통과의례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표시가 된다. 정해진 의례일의 전날 저녁에는 소녀들이 남자 친구들과 함께 시키로이노에에서 잠을 잔다. 소녀들은 자연히 흥분을 감추지 못하게 된다. 이는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커다란 행사이기 때문이다.
"모든 고통과 두려움을 무시할 수 있고, 그 소녀들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에게 하는 일종의 광증 같은 것이 그들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상태야말로 그들이 어떻게 그처럼 어려운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고, 그 고통스러운 수술을 견디며, 자기를 지탱할 수 있는가를 설명해줄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된다."
의식이 있는 날 아침, 소녀들은 "스승"이나 "감독자"들과 함께 수풀 속에 들어가 나무를 한다. 그런데 나무를 베는 일을 하나의 의식으로 행한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승과 함께 도끼자루를 같이 쥐고 한 토막의 나무만을 자르는 것이다. 이 행위는 후보자들의 협동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고, 이러한 행사를 통하여 이미 그들은 서로가 하나의 몸, 하나의 집단임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때 같이 가는 스승을 모티리오트(motiriot, 복수일 경우에는 모티레니크(motirenik))라고 부르는데, 이 사람들은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가르쳐주며, 함께 잠을 자면서 의식이 다 끝날 때까지 언제나 후보자들과 같이 행동한다. 스승인 이 부인들은 그 후보자들의 일치의 상징이고, 상담자이며, 그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는 원천이 되고 있다.
의례를 준비하는 부인들이 의례를 행할 집안에다 쐐기풀을 마련하는 동안, 소녀들과 그들의 남자친구들은 함께 춤을 춘다. 이 춤은 밤늦게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이 춤이 끝나면 육체적인 의례가 시작된다. "여자가 앉으면 끈으로 음핵을 잡아맨다. 음핵의 출혈이 과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소녀들은 다시 한번 춤을 추며 뛰어 돌아다닌다. 이렇게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춘다. 모두 지쳐 쓰러지면 함께 모여 나이가 많은 어른이 나와서 스승들(motirenik)의 손이 능숙하고 가볍게 움직여 일이 효과적으로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그러면 모두가 "가볍게(wisis, 무겁지 않게)하고 되뇌면서 그 기도에 공감을 표현한다.
소년들은 소녀들을 향해 겁쟁이라고 소리를 치던가, 온갖 모욕적인 언사를 쓰면서 그들을 화가 나게 한다. 이 같은 행동은 소녀들의 용기와 기개를 자극시켜 실제 수술이 행해질 때 용기를 보여주기를 바라서 하는 것이다. 소녀들은 노래를 하고 호루라기를 불면서 자기네 남자 친구들이 오면 짐승가죽 위에서 자지 않고 그 친구들의 넓적다리 위에서 잠을 자겠노라고 대꾸한다. 소녀들은 넓적다리에 달린 종을 요란하게 흔들면서 "죽을 기를 쓰고 노래를 한다."
그날 밤늦게 남자들은 잠깐동안 잠을 자러 가고, 소녀들은 스승의 지시대로 수술하는 집에 들어가 쐐기풀로 음핵을 찌른다. 이렇게 하면 음핵은 무감각해지고 부풀게 된다. 그들의 젖가슴도 쐐기풀을 대어 찌른다. 쐐기풀은 대단히 아픈 것이어서 소녀들은 울부짖기도 한다. 그 소리를 누르기 위해 부인들은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다음 날 이른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의식을 행한 집 둘레에 모여 약 50미터나 100미터쯤 떨어져 둥글게 둘러선다. 의식에 참여했던 부인들은 그 안에서 그들 나름대로 원형으로 서고, 가운데에다 수술을 할 때 사용할 걸상을 놓는다. 그리고 수술 집행자는 구부러진 칼을 들고 선다. 그런 다음에 부인들은 소녀들의 처녀성 여부를 조사한다. 처녀인 소녀는 수술을 받기 위해 걸상 위에 앉고 처녀가 아닌 사람은 맨땅 위에 앉는다. 수련자는 아랫도리를 벗고 두 다리를 넓게 벌린 채 하늘을 쳐다본다. 수술자는 왼손으로 음핵을 잡고 오른손으로 재빨리 그것을 잘라낸다. 소녀들은 이 단계에서는 별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이미 쐐기풀 때문에 성기가 무감각해졌기 때문이다. 혈관이 잘 묶여지지 않은 경우(거의 그런 일은 없지만)를 제외하고는 별로 많은 피를 흘리지 않는다. 그것이 끝나면 다시 종을 넓적다리에 단다. 구경꾼들은 재빨리 달려가 누가 겁쟁이였고 누가 처녀였으며, 누가 처녀가 아니었는가 하는 것을 알린다.
이 순간이 통과의례에 참여한 소녀를 가진 가정이나 친척들에게는 가장 긴장된 순간이다. 만약 어떤 소녀가 겁쟁이라든가 처녀가 아니라고 알려지면 그 부모와 형제들은 스스로 죽어버리든가 그 소녀를 살해할 만큼 심각한 치욕으로 느낀다. 다른 사람들이 말려야 겨우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육체적인 수술을 행하는 의례가 모두 끝나면 소녀들은 가죽옷을 입고 넓적다리에 달아놓은 종을 격렬한 몸짓으로 흔든다. 소년들이 몰려와 그녀들을 축하해주고 자기들이 이 의례를 위하여 소녀들에게 마련해준 장신구와 옷을 찾아간다. 소녀들은 마침내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수련자들의 부모들은 넝쿨나무(시넨데트, sinendet)를 집으로 가져다가 집 문 앞에 두어 자기네 딸이 통과의례를 거쳤음을 나타낸다. 딸이 겁쟁이였음이 드러난 경우에는 그 넝쿨나무를 조금만 가져다가 태운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그 여자아이들과 그들을 도와주는 부인들은 일정기간동안을 격리된 상태에서 보낸다. 이 기간은 일종의 교육기간으로, 이때 자기네 부족이 지니고 있는 지식과 지혜를 배우게 된다.
수술을 하고 난 처음 4일 동안은 상처가 몹시 아프다. 그래서 원하든 원치 않든 소녀들에게 우유와 고기를 먹게 한다. 그 다음에는 통과의례가 끝날 때까지 나무로 된 수저(세케티크, seketik)를 가지고 음식을 먹는다. 그 기간 동안에는 그 수련자들이 종교적으로 부정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어떤 것도 건드릴 수 없게 한다. 또 만약 어떤 사람이 여자들의 상처를 건드리게 되면 그 의례의 주례자는 그 소녀를 심하게 때린다. 남자들은 절대로 이 소녀들을 보아서는 안되고, 소녀들은 저녁에나 이른 아침에밖에 나갈 때면 머리를 가리고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고 걷는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체로 집안에서 하루를 보낸다.
의례의 주재자나 스승들은 소녀들에게 집안 살림에 관한 일, 결혼에 관한 일 등을 가르쳐 준다. 예를 들면 남편과 어떻게 동침할 것인가, 임신한 때로부터 아이가 태어나 걸음을 걷기 시작할 때까지 어떻게 성생활을 억제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매력적인 아내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아이들을 기를 것인가 등을 배운다. 또 소녀들은 "올바른" 식사습관도 배운다. 예를 들면 고기와 우유를 같이 먹으면 안되고, 어린아이들에게는 꿀과 고기를 함께 먹이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벌들이 꿀통을 비어 버리기 때문이다.
날씨를 구별하는 법, 어떻게 해야 부지런하고 근면하게 될 수 있는가 하는 법, 빌려온 물건을 돌려줄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든가, 친절하고 공손하게 하는 법 등도 배운다. 그들이 받은 교육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이들의 양육에 관한 지식이다. 난디족의 남자들은 아이들이 10세쯤 될 때까지는 전혀 아이들을 건드리지도 않고 무엇을 하라고 이르지도 않는다. 때문에 모든 면에서 아이들은 여자들이 키운다. 그것이 여자들의 의무인 것이다. 출산을 하고 나면 산모는 부정하다고 해서 약 6개월 동안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심지어 남편을 위한 식사준비도 하지 못한다.
처음으로 젖을 먹일 때면 그 직전에 산모가 흐르는 강물에 가서 자기 몸을 씻고 두 손을 쳐든 채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와 자리에 앉으면 다른 사람이 아이를 안고 와서 산모의 무릎 위에다 내려놓는다. 그러면 산모는 아이에게 젖을 빨게 한다. 이러한 제반 규칙을 엄격히 지키지 않으면 산모에게 큰 슬픔이 닥쳐올 수도 있고 심지어는 산모가 죽게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격리되어 있는 교육기간 동안에 "소녀는 서서히 여성으로서의 삶의 모습을 천을 짜듯 엮어나가게 되고,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성인의 것으로 바뀌어가게 된다. 이전의 자기를 잊어버리고 스스로의 과거를 관조할 수 있게 된다. 그녀는 삶 속에서 자기가 참으로 속해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동안 소녀는 잘 먹는다. 대부분의 경우 "영양과잉이 될 정도로 잘 먹는다." 이렇게 해서 격리 기간이 다 끝나면 "소녀들은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몸이 커지고 살이 찐다. 마음도 몸도 정신도 완전히 변화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이제는 가사를 돌 볼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기고 자기들 공동체 안에서의 자기 몫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관찰해보면 이러한 통과의례의 수행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관습에 대한 기독교 선교사들의 공격은 실제에 있어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도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처녀들과 결혼을 하게 되면 비밀하게 그 의례를 거치도록 한다. 또 부모들도 비록 딸의 통과의례를 공개적으로 시행할 만한 용기는 없다 할 지라도 역시 비밀로 이 의례를 행한다. 사람들은 소녀가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으면 음핵이 길게 자라고 가지가 뻗는다고 믿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여인의 자녀들은 비정상적이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여인은 아직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그 여인이 낳은 아이는 "어린아이의 아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정황을 염두에 둔다면 통과의례를 행하는 심리적인 중요성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의례를 행하지 않는 여인은 참으로 "그 어느 누구"일 수도 없고 "불완전한 인간"이며, 아직도 "어린아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함께 사는 협동적인 실존의 분위기 속에서는, 따라서 어떤 사람이 그러한 의례에 참여하는 것을 회피한다던가 피해 달아난다던가 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러한 여인은 조만간 그 가족이나 이웃의 조롱거리가 되고, 그녀에게 어떠한 불행한 일이 닥치게 되면 제의적 성숙의 "고리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격리기간이 끝나고 통과의례를 모두 마치면 곧 소녀들은 결혼을 한다. 그들이 격리되어 있는 동안 집안에서는 남자 친구들의 집안과 결혼에 대하여 의논을 하고 혼인약속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의례에 참여하지 않은 여자는 결혼을 하지 않고 일생을 보내던가, 결혼을 하더라도 비정상적인 아이를 잉태할 거라고 하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현대의 생활이 이러한 태도나 실천에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사실이다.
비록 난디족의 여성 통과의례의 자세한 국면들이 다른 종족들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의례의 근본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다. 즉 의례가 성숙을 위한 의례라는 점, 그래서 어린아이임을 단절하고 어른에로 결합되는 것을 극화한 의례라는 접은 동일하다. 성기는 생명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성기를 상처 내는 것은 생명의 분출을 열어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열어놓아야 비로소 막히지 않고 생명이 흘러나올 수 있는 것이다. 격리는 죽음의 상징이다.
그것은 마치 씨앗을 땅속에다 묻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의례를 끝내는 것은 새롭고 책임 있는 생명으로의 부활, 곧 새싹의 돋아남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자아이나 여자아이들의 통과의례를 통하여 그들이 속한 전체 종족의 협동적인 삶 자체가 다시 소생하게 된다. 그 공동체의 삶의 리듬에다 새로운 진동의 계기를 마련해주고, 그 공동체의 생명력이 되살아나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의례를 거절하는 사람이나 그 의례의 조화를 망치는 사람(처녀가 아니라든지 겁쟁이라든지 해서)은 전체 난디족의 사회에 심각한 반역을 범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여인은 공동체 전체를 멸망시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렇게 보면 부끄러움을 당한 딸이나 누이의 부모들이나 가족이 자살을 하려 한다든지, 그 소녀를 전체의 공동체적 실존을 위하여 죽여야 한다든지 하는 생각을 하게되는 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 이 의례는 깊은 차원에서부터 솟아난 심원하게 거룩한 제의이다. 이 제의에 종족 전체의 사활의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의례는 죽음과 와해의 극복 및 정복을 종교적으로 극화한 것이다.
☞ 은데벨레(Ndebele)족의 사춘기 의식(puberty rite) : 은데벨레족은 형식화된 통과의례 대신에 성숙기의 변화를 표현하는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의식을 행하고 있다. 남자아이의 경우를 보면 최초로 몽정을 한 다음 날,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일찍 일어나 벌거벗고 강에 가서 몸을 씻는다. 그리고 나서 집에 돌아와 가축의 우리에 이르는 출입구 가까이의 집 밖 모퉁이에 서 있는다. 그러면 그것을 본 다른 소년들이 몰려나와 장대로 그 아이를 때려준다. 그 소년은 숲으로 달아난다. 그리고 거기에서 2, 3일간 머문다.
그 동안 다른 소년들은 그를 조심스럽게 지켜본다. 그 며칠 동안 그 소년은 낮 동안에는 결코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 다만 밤에만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 기간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서 전통적인 주의가 마련해준 약이 섞인 음식을 먹는데, 이 일은 하나의 의식으로 행해진다. 즉 주의가 장대 끝에다 옥수수로 된 음식을 놓고 이것을 그 소년의 입에다 틀어넣으면 그 아이는 그 막대를 입에 꼭 물고 그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잘 하면 주의는 그 막대를 가지고 그 아이를 세 번 혹은 네 번 내려친다. 이러한 매질은 그 아이를 단단하게 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이 일이 끝나면 그 아이의 아버지와 친척들이 몰려와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그 아이에게 선물로 준다. 여자아이들의 경우에는 첫 번째 월경을 한 다음 오랫동안 찬물에서 몸을 씻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그녀의 부모들은 커다란 잔치를 베푸는데, 이 잔치가 끝나면 소녀들은 긴치마를 입기 시작한다. 긴치마를 입는 것은 이제 그 여자아이들이 결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며칠 동안을 수풀 속에서 보내는 것은 역시 "죽음과 부활"의 관념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유년기를 단절하는 행위는 몸을 씻는 일로 극화된다. 이 제의 적인 목욕은 동시에 비생산적인 삶의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보다 깊은 종교적 정화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또한 이 의식은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 즉 결혼, 재산의 소유, 책임지는 행위(아이들은 "단단하게"하기 위하여 매를 때리는 일을 참고할 것)등의 준비를 극화한 것이다. "단단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인간이 이제는 모든 특권과 의무를 지고 보다 넓은 사회에 완전히 협동적으로 참여하게 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며, 그러한 자질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회문화 > 아프리카의 민족과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font color=magenta>[ 아프리카의 사회조직과 통과의례 ] - 비밀스런 결사조직, 비의결사, 연령집단 (0) | 2003.09.27 |
---|---|
<font color=magenta>[ 아프리카의 사회조직과 통과의례 ] - 할례(circumcision) (0) | 2003.09.27 |
<font color=magenta>[ 아프리카의 사회조직과 통과의례 ] - 친족(kinship) (0) | 2003.09.27 |
<font color=green>[ 성과 결혼 그리고 가족 ] - 가족, 세대, 개인 (0) | 2003.09.27 |
<font color=green>[ 성과 결혼 그리고 가족 ] - 출생 (0) | 2003.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