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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에이즈(2) - 에이즈에 대한 인식

남아공 사람들도 다른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에이즈에 관련해 수치심을 느끼고 부인한다. 또한 에이즈에 감염되었다고 추정되는 사람들은 공동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가족으로부터도 외면당한다. 또한 에이즈는 가까이 가거나 접촉만 해도 옮길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도 커다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남아공의 에이즈(1) - 에이즈 치료약

우리는 흔히 “AIDS에 걸려 죽는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것은 사실과는 일정 거리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AIDS는 질병이나 병원균이 아니라 하나의 ‘증후군’(Syndrome)일 뿐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AIDS를 불러일으키는 병원균은 지금까지는 HIV라고 부르는 병원균이다. 다시 말해, AIDS는 HIV 병원균에 감염 된 사람이 체내 저항력이 급속히 떨어지면서 생기는 면역 결핍증을 일컫는다. 따라서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AIDS의 직접적인 원인은 HIV라는 병원균이다. HIV는 병원균이기는 하지만 사람에게 직접적인 치명타를 가하는 병원균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단 HIV에 감염된 사람을 HIV 양성 반응자(hiv+)라고 부른다. HIV는 종양 바이러스(retrovirus)로 체내..

[케냐 ]아프리카성장과 기회법(Agoa)의 연장 추구

케냐 경제 개정 위원회는 아프리카성장과 기회법(Agoa)의 연장을 추구하고 있다. 2002년 말, 다이엘 아랍 모이(Daniel Arab moi)를 대신해, 음와위 키바키(mwai Kibaki)가 케냐의 대통령으로서 당선 이후, 새로운 정부는 경제 회생의 야심찬 프로그램들의 개편위에 출범되었다. 키바키 정부의 핵심 인사는 무역과 산업 장관인 무키샤 키투이(Mukhisa Kituyi)이다. 지난 무역과 개발에 대한 UN회의에서 키투이는 부시(Bush) 행정부와 미 의회의 로비 맴버들을 만나기 위해서 워싱턴을 방문했었다. 이는 9월 30일이 만기일인 아프리카 성장과 기회 법(AGOA)의 연장을 위해서 였다. 1~10는 AllAfrica.com(아프리카 전문 기사 사이트)와 장관과의 인터뷰내용을 담은 것이다...

수단 내전 - 다르푸르의 참상(6)

수단 남부 다르푸르(Darfur) 지역의 내전은 아주 심각한 상태로 유엔에서 내전을 즉각 중단할 것을 결의하였다. 약 350만의 인구를 지닌 이 지역은 수단의 서부 지역으로 주요종족은 다수의 아프리카인인 퍼르(Fur), 마살리트(Masalit) 그리고 자가와(Zaghawa)등 주로 농경민족이 살고 있었고 아랍인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였습니다. 1989년 구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슬람인 아랍인들에게 정치적 경제적 권리를 보장하고 다수의 아프리카인들을 소외시키는 과정에서 분쟁의 소지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종교적 분쟁은 아닙니다. 이 지역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무슬림인데 정부군과 아랍 민병대들이 모스크를 훼손하고 아랍의 지도자인 이맘(imams)를 살해하고 코란을 모독하는 고의적인 행동으로 인해 상황..

수단 내전 - 평화협정체결(5)

2004년 5월, 21년 동안 지속된 내전을 끝내기 위해 수단정부와 남부 반군인 수단인민해방군이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이 평화협정은 지난 21년간의 수단 내전을 평화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개입으로 수단 정부와 최대의 반군조직인 인민해방운동(SPLM) 사이에 맺어진 평화협정이라는 데 더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겠지요. 수단의 평화정착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상당한 난관이 많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의 평화협상은 최종적인 것도 아니며 다르푸르 지역 같은 경우는 별개의 협상이 진행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차후의 협상에서도 권력분배의 문제와 수도 카르툼에 대한 종교적 영향력 행사에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수단은 국가의 경제발전..

수단 내전 - 내전의 특징(4)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파간 이념간 벌어지는 내전상황과는 달리 수단의 내전상황은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의 영토를 빼앗기고 소수민족으로 전락한 토착민들이 자신들의 거주지역을 분리 독립시켜줄 것을 요구하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수단 분쟁은 강대국의 직접적 이익이 걸려있지 않고 그 영향범위가 내부로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 국제사회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 수단의 내전상황은 수단정부가 분리독립에 대한 요구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며 최선의 방책은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무장대결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수단 내전 - 내전발발 요인(3)

수단 정부는 587개의 부족 중 단지 19개 부족이 중심이 되어 이슬람원리주의에 입각한 하나의 수단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남부 3개주의 소수종족은 기독교와 원시종교 믿으며 자치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수단 내전은 본질적으로는 반정부 분리운동의 성격을 띄고 있으나 종교 부족간의 갈등과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자원전쟁의 양상을 띄면서 더욱 격화되었다. 수단의 내전은 종교적인 부분보다는 자원의 공유와 문화적인 충돌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타당하다. 북부의 수단인들은 남부의 문화를 경멸하고 있으며 토착민들을 지배아래 두는 것을 신성한 의무처럼 보고 남부의 석유자원개발에 대해서도 자기들이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수단 내전 - 내전발발 일지(2)

1956년 영국-이집트 령에서 독립할 때부터 내전에 발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다. 1969년 구데타로 집권한 누메이리 정권이 1983년 자치를 유지하고 있던 남부 3개주에까지 이슬람법(Sharia)을 도입함에 따라 음주, 간통 도둑질에 대해 공개적인 태형이나 수족을 절단하고 남부의 자원을 확보하려고 하자 흑인 기독교도들이 수단인민해방군(SPLA)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 1989년 바시르 장군이 누메이리 정권에 대한 구데타 이후 군사독재를 강화하고 이슬람원리주의의 민족이슬람전선(NIF : National Islamic Front)과 손을 잡고 이슬람법의 적용을 강화함. 비서구노선을 강화하여 이란, 이라크, 리비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오사마 ..

수단 내전 - 수단은 어떤 나라(1)

수단은 아프리카 53개국 중 가장 면적이 넓은 국가로 영토의 절반이 나일강의 중류 및 상류의 분지이며 북동쪽 끝이 홍해에 면한 짧은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BC 3000년경에는 이집트의 파라오가 수단의 북부지역인 누비아를 침략한 후 이집트와 교류가 본격화되었고 BC 7세기경에는 누비아이들이 세운 쿠쉬왕국이 이집트를 정복하여 지배함. 6세기에는 기독교가 전파되었으나 7세기부터 아랍인들이 수단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1920-30년대 이래로 남부지역에 대한 차별과 소외가 있어왔고 1956년 독립이후에도 아랍인들과 무슬림들에 의해 중앙정부가 운영되는 과정에서 남부세력은 차별철폐, 민주화를 주장하기 시작했고 결국 자치/독립을 요구하면서 수단인민해방군(SPLA)를 조직하여 정부군과 대립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