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아프리카 역사 100장면

3. 가나와 말리의 제국들

Mansa Musa 2008. 7. 17. 11:49
 

고대 가나(Ghana)는 서부 아프리카에서 초기 철기 시대 공동체중 하나였으며 니제르-콩고(Niger-Congo)어군 중 하나인 소닌케(Soninke)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왕국은 북쪽의 사하라, 세네갈 강, 그리고 남쪽의 니제르 강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금이 매우 풍부한 곳이었다. 이곳의 지배자는 무역로를 장악하고 수단의 동쪽 지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

가나 제국은 철과 농업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사하라 횡단 무역로는 말들을 제공하였고 철제 무기의 사용과 함께 강력한 군사력으로 이웃의 부족들을 복속시켰다. 번창하는 무역과 왕가라(Wangara)와 밤북(Bambuk)의 금광으로부터의 수입은 수도인 쿰비-살레(Kumbi-Saleh)를 번영시켰다. 제국의 전성기인 1050년쯤, 베르베르인의 무역거점인 와다구스트(Awdaghust)를 점령했다. 

8세기 초에 가나의 명성은 이븐 바투타(Ibn Battutta)와 알 파자르(Al Fazar)라는 아랍의 지리학자의 기록에 남겨져 있다. 상세한 기록은 1067년 가나를 여행한 알-바크리(Al-Bakri)는 가나의 왕은 자신의 무역과 사업을 위해 이슬람 관리와 서기를 자신의 궁전에 고용하고 있으며, 한쪽은 아프리카인이 한쪽은 이슬람 이주자들과 무역업자들이 살고 있는 거대한 도시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퉁카 마닌(Tunka Manin) 왕을 거대한 제국의 위대한 통치자로 묘사하고 있다.

가나와 알모라비드(Almoravids) 사이의 분쟁은 사하라 횡단 무역로에 영향을 주었고 1055년에 산하자 베르베르족(Sanhaja Berbers)은 아와다구스트를 다시 탈환했다. 1076년에는 가나에 침입하여 정복하기도 했다. 12세기까지 가나 제국은 쇠락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가나의 왕과 교역을 하던 대부분의 금 상인들은 왕가라에서 온 만딩카(Mandinka)족이었다. 13세기 초에, 나일 강의 상류에 있는 부레(Bure)에서 새로운 금광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사건은 남쪽의 소닌케족과 말린케(Malinke)이 사하라 횡단 무역에 활발히 참여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반란을 일으켰고 가나 제국을 멸망으로 이끌었으며 소쏘(Sosso)에 새로운 왕국이 등장할 수 있게 했다. 이곳의 통치자인 수만구르(Sumuguru)는 만린케 왕국과 소닌케 왕국을 정복하여 약탈하고 통치자들을 살해했다. 소쏘에 대한 저항은 말린케 족인 순디아타(Sunjata)에 의해 조직화되었는데 수만구루에 대항하기 위해 말린케 족을 통합하고 1235년 수만구르를 물리쳤다. 이후 순디아타는 부레의 금광 근처에 있는 니아니(Niani)에 수도를 정하고 말리제국을 건설했다. 그는 만사(mansa)라는 칭호를 받음으로서 종교적 세속적 지도자로서 확고한 위치를 갖게 되었다. 말리 제국의 다른 주요 무역 도시는 젠네(Jenne), 왈라타 타드메카(Walata Tadmekka), 그리고 가오(Gao)였다. 또한 주요 문화적 중심지였던 팀북투(Timbuktu)는 아칸(Akan)족의 금광이 발견됨으로서 발전하게 되었다. 

말리는 말리의 부와 안정, 그리고 학자들로 인해 유명해졌다. 비록 2세기 동안 지속되었지만 말리의 전성기는 서부 수단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지게 되었다. 말리의 통치자들은 모두 경건한 이슬람교도였다. 만사 칸칸 무사(Mansa Kankan Musa ; 1312-1337)의 재위시기가 가장 절정기였으며 1324년 메카에 순례를 다녀온 일은 말리의 부를 세상에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랍 여행자인 이븐 바투타는 만사 술래이만(Mansa Sulayman ; 1341-1360)이 통치하고 있던 1352년에 말리를 방문하였다. 그는 말리 제국의 평화와 번영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