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테마 기행 285

7. 키하울리 3

나는 아이들을 다섯 두었다. 딸이 둘, 아들이 셋이다. 나의 부모님 경우와 똑같다. 애들 중 어떤 놈은 아주 머리가 좋고 어떤 놈은 좀 쳐지고 그렇다. 나의 큰 애는 1948년에 태어났고 그 후 3년 터울로 아이들이 태어났다. 송게아에서는 관습이 그렇게 하도록 되어있다. 연년생은 좋지 않고 적당한 간격을 두고 태어나도록 했다. 그런데 요새 젊은이들은 성급해서 그런 간격을 지키지 않는다.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는데 우리 때는 그런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노인들이 아이가 세 살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다음 아이를 낳으라고 가르쳤다. 윗 아이가 좀 커야 갓난아기가 태어나도 수월하니까. 그러나 아이들 수에는 제한이 없었다. 한없이 많이 둘 수가 있었다. 딸이건 아들이건 상관하지 않는다. 큰애는 이제 50이 넘었는데..

6. 키하울리 2

나의 어머니는 술을 아주 좋아하셨다. 이웃에 가서 술마시기를 좋아하셔서 곧잘 집에 늦게 오셨기 때문에 어렸을 때는 우리가 저녁을 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내가 결혼하자 어머니는 아예 저녁 지을 부담이 없이 마음 놓고 술을 마실 수 있었는데 우리 형제들은 한편 걱정이 되었다. 나의 두 누님은 물론 나보다 더 먼저 결혼을 했다. 그들은 아주 먼데로 시집을 갔다. 한 누님은 킬로사라는 곳으로 갔다. 다우리로 염소를 많이 받았는데 돌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 다 팔아야 했다. 나는 그 후 oversea coporation 이라는 개인회사에 취직이 되어 어머니의 허락을 맡고 그 회사에 들어갔다. oversea coporation 은 땅콩을 가공하는 회사이다. 그 회사는 린디라는 곳에 있어서 나의 아내에게 고..

5. 지금 사람들은 옛날같지가 않다. 몇 명만 괜찮고 대부분 다 변했다 - 키 하울리 1

키하울리 (남, 73세) "지금 사람들은 옛날같지가 않다. 아주 몇 명만이 괜찮고 대부분 다 변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도시 뿐만 아니라 시골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차라리 도시에 이대로 있는 것이 낫다. 시골 사람들이 다 변해버려서. 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이름은 죠셉 힐라리 키하울리다. 나는 1926년 송게아의 키보세라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탄자니아의 남쪽인데 높은 산이 많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평범한 사람들로 한번도 어디 일자리에 채용되어본 본 적이 없다. 어머니는 농사를 지었고 아버지는 가축을 돌보았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네 살이 되기 전에 돌아갔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는 반면 나의 어머니가 우리 형제를 돌보고 키웠다. 우리를 도와 줄 다른 사람이 없었는..

4. 나의 즐거움은 내 노동의 댓가를 보는 것이다 - 아스테리아

아스테리아 페르디낭드 (여, 78세) “나의 즐거움은 내 노동의 댓가를 보는 것이다. 가령 내가 농사를 지어 수확을 해서 식량이 되면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하다. 보통은 아플 때나 또는 내가 무엇을 했는데 잘 안되었을 때, 즉 수확이 나쁠 때 빼고는 아무것도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없다.“ 내 이름은 아스테리아이고 카토마 마을의 일로게로에서 태어났다. 현재 78세이다. 부모님은 자식을 일곱 두었는데 나는 그중의 세 번째이다. 우리 아버지는 바나나 농장과 소가 여러 마리 있었다. 소가 열 마리도 넘었지만 어떤 소는 그의 친구가 돌보았기 때문에 정확히 몇 마리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소를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주었는데 그들은 소에서 나오는 똥으로 거름을 만들어 밭을 기름지게 했다. 아버지는 가축을 돌보는 외에..

21. 탄자니아식 빵과 과자

.챠파티 팬케잌처럼 생겼다. 밀가루와 물과 기름을 섞어 반죽하여 잘 치대서 얇게 밀어 후라이 팬에 부친다. 노릇하게 약간 갈색 반점이 생길 때까지 익힌다. 발효제가 들어가지 않고 만드는 과정이 비교적 간단하다. 탄자니아에서 가장 보편적인 빵이 챠파티가 아닐까 한다. 챠파티는 아침에 차에 곁들여 먹기도 하고 점심이나 저녁에 식사에 곁들이기도 한다. 탄자니아에 있는 한 이 챠파티를 피할 수 없다. 거리에서나 탄자니아인 집에서나 아니면 무슨 행사가 있을 때나 어디에선가 항상 이 챠파티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사모사 삼각형으로 생긴 일종의 튀김 만두다. 밀가루 반죽을 엷게 밀어 그 속에 고기나 야채를 넣고 삼각형으로 접어서 기름에 튀긴 것이다. 간식이나 아침, 혹은 간단한 점심으로 먹는다. 손으로 집어먹을 ..

3. 음야카 2

나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목수로서 집 짓는 일을 배워서 내 직업에 따라 오랫동안 일을 해왔다. 지금도 가끔 집 짓는 일을 한다. 우리집은 시멘트 블록집에 양철 지붕이다. 전기도 들어온다. 의자도 있고 라디오, 재봉틀, 자전거, 찬장, 석유곤로가 있다. 또 소가 세 마리있다. 나는 이런 것들을 다 살 수 있었다. 아버지가 별 볼일 없이 살던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안히 살고 있다. 내 인생이 아버지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산 것보다 더 못살고 있는데 그 애들은 나처럼 돈벌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들 집은 흙집에 양철지붕인데 전기는 없다. 자전거는 있다. 다른 아들은 벽돌집이지만 역시 전기가 없다. 그래도 큰애보다는 낫다...

2. 나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살아왔다. 내 인생이 아버지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 음야카 1

소스 피터 음야카 (남, 67세) ‘나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살아왔다. 내 인생이 아버지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적이 없는 한 애들은 내가 살아온 것보다 더 못하게 살 것 같다.’ 내 이름은 소스피터 음야카이다. 나는 1933년 8월 24일 카토마 마을의 루킨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음야카이고 어머니는 에네스티나라고 부른다. 나는 장남이다. 내 밑으로 누이동생 둘, 남자 동생이 하나 있다. 다 해서 네 형제이다. 나는 무숑게라고 불리우는 전통적인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바나나 밭과 소가 두 마리 있었다. 어머니는 따로 재산이 없었고 전적으로 아버지한테 의존했다. 나는 나의 친할머니한테서 자랐다. 나는 아버지가 학교에 보내려고 나를 데려갈 때까지 할머니와 함께 있었다. 내가 열 살 때 학..

1. 킬리만자로를 마시는 사람들 - 탄자니아 사람들 이야기

‘아프리카’ 하면 흔히 두 가지의 획일적이고도 상반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하나는 가난과 질병, 전쟁으로 얼룩진 대륙의 이미지이다. 검은 대륙이나 절망의 대륙으로 낙인찍으며 기아의 참상이라든가 에이즈나 풍토병의 공포, 끝없는 내전에 초점을 맞춘 미디어들의 보도에 접하다 보면 아프리카는 온통 가난과 질병 그리고 전쟁으로 얼룩져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그동안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어 왔다. 다른 하나는 동물의 천국으로 시작하여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 원시 그대로의 세계 같은 다소 환상적인 이미지이다. 흔히 텔레비전에서 소개되는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프리카는 그야말로 동물의 천국이고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지연과 원시의 세계로 인식을 하기가 ..

20. 나의 음식 이야기 2 - 냘랼리 부인

우리 집은 아침먹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남편이나 나나 다 은퇴를 했기 때문에 아침에는 느긋하게 잠을 자고 아홉시 반 경에 아침을 먹게 된다. 아침으로는 삶은 카사바 혹은 숯불에 구운 카사바와 함께 우유나 차, 혹은 포리지(옥수수 가루 죽)를 함께 마신다. 남편과 같이 아침을 먹을 때도 있고 남편이 늦게 일어나면 따로 먹는다. 남편이나 나나 다 카사바를 좋아한다. 수쿠마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은 작년에 퇴직을 했는데 남편이 근무를 하고 있었을 때는 달랐다. 아침에 7시 경 차를 한잔 마시고 내가 싸주는 빵과 달걀을 가지고 출근해서 오전 10시 반 티 브레이크 시간에 아침을 먹었다. 직장을 나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비슷할 것이다. 집에서는 차나 커피 한잔 정도를 ..

19. 망고나무 아래서 - 열대 과일과 채소 2

2)과일 탄자니아는 지대가 다양하기 때문에 사실 모든 과일이 생산 가능하다. 주로 나는 과일 중 파파야, 바나나, 파인애플은 항상 볼 수 있고 오렌지, 망고, 아보카도, 패션푸룻, 수박 등은 철이 있다. 잭프룻, 커스터드 애플, 과바 등은 철에만 잠깐 볼 수 있다. 두리안, 람부탄 등 동남아에서 많이 나는 과일은 주로 잔지바르섬에서 난다. 아프리카에는 원래 과일을 먹는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어린 아이들이나 먹는 군것질 정도로 생각했고 어른이 먹으면 창피하게 여겼다. 지금도 식사 후 후식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식사의 일부이거나 식간의 간식거리 개념이다. . 파파야 원산지는 중남미로 알려져있다. 탄자니아에서 가장 흔한 과일이 파파야이다. 파파야 나무 꼭대기에 열매가 끊임없이 달려서 차례로 익기 때문에 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