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 21

10. 아샤 살롬 압달라 2

아이들은 두 번째 남편에게서 지금 나와 같이 일하고 있는 큰아들을 포함해서 모두 다섯 아이를 낳았는데 그중 하나는 죽었다. 세 번째 남편에게서는 아이를 넷 낳았다. 큰아들은 1962년 막내아이는 1983년 생으로 지금 열여덟이다. 딸은 호텔에서 일하고 알리도 호텔에서 일하고 하나는 택시운전사이고 하나는 아직 학교에 다니고 딸 하나는 결혼해서 집에 있고 다른 딸 하나는 나와 같이 일하고 있고 셋은 오만에 있다. 그애들은 일자리를 찾아 거기에 간 것이다. 딸 하나는 중학교 1학년까지만 마쳤다. 그리고는 결혼해버렸다. 정말 실망스럽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아이들을 교육을 시키려고 했는데. 여기 지금 나를 돕고 있는 애는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 시험에는 떨어졌다. 그래서 막내아들만큼은 제대로 교육을 시키고 싶..

9. 나는 나의 아이들이 일을 하는 것을 볼 때 행복하다 - 아샤 샬롬 압달라 1

아샤 살롬 압달라 (여, 58세) ‘나는 나의 아이들이 일을 하는 것을 볼 때 행복하다. 나는 내 사업에서 돈을 벌어 사업을 늘리고 쿠션카바를 외국에 수출하고 싶고 내가 고용한 모든 사람들에게 월급을 지불하고 싶다.’ 나의 이름은 아샤 살룸 압달라이다. 나는 1943년 9월 5일에 태어났다. 나의 증조할아버지는 오만에서 왔는데 잔지바르 여인과 결혼해서 그곳에 자리잡았다. 나의 할아버지는 잔지바르에 낳아서 흑인 여인과 결혼해서 아들하나 딸 하나를 두었다. 그 아들이 바로 나의 아버지이다. 이름은 마수드 비날리이다. 나의 아버지는 아랍여인(나의 어머니)과 결혼해서 아이를 여덟을 낳았다. 아버지는 돌아가고 어머니는 지금도 살아있는데 나이는 잘 모르겠다. 어머니는 그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샴바와 집이 있다. 그 ..

23. 술과 음료 이야기 2

2. 음료 1)차 탄자니아 사람들은 아침이면 으레 물을 끓여 차를 마신다. 차에 설탕을 넣어 마시는 것으로 빈 속을 채울 수 있고 특히 고지대나 해안지방에서도 서늘한 계절, 아침에 차를 마셔서 추위를 달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 직장에서는 고용원이 아침마다 차를 끓여 보온병에 넣어 놓는 것이 일과이다. 티 브레이크가 있어서 10시쯤이면 전 직원이 차나 커피를 마신다. 그러나 이렇게 차를 마시는 습관이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온 것은 아니다. 탄자니아에 차가 들어온 것이 1920년대로 독일의 정착민들이 ‘우삼바라’라고 하는 기후가 좋은 곳에 차 농원을 만들면서부터였다. 그 후 차 생산은 점차 늘어나 차는 탄자니아의 주요 수출품목이다. 차의 국내 소비량은 설탕이 귀할 때는 저조했으나 설탕을 손쉽게 구하면서부..

22. 병맥주를 마시면 감옥행? - 술과 음료 이야기 1

1. 술 탄자니아가 탕가니카로 불리기 시작하던 19세기 말 식민지 시절, 백인들은 흑인들이 술 마시는 것을 금지했다. 흑인들을 마치 어린아이처럼 여겨 행여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릴까 염려한 까닭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술 마시고 식민정부에 대항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깔려있었다. 따라서 아프리카인은 병에든 포도주나 위스키, 맥주 등을 살 수 없었다. 1934년까지는 시중에 병맥주가 아예 없었고 만일 흑인이 병에 든 술을 마시면 6개월 형에 처해졌다. 특히 병에 든 술을 금지한 것은 백인들에게 술이란 유럽에서 들여온 병에 담긴 술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인들의 전통 술은 비공식적인 어떤 것이었다. 사실 예전 아프리카에서 술은 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의식이나 행사에 반드시 술이 있어..

8. 키하울리 4

제 어머니 즉 아내와 나는 97년에 결혼 50주년되는 금혼식을 했었다. 이제 결혼한지 52년이 된다. 나의 아내는 이제 좀 약해지기는 했으나 여전하다. 우리 소유의 집을 지니고 산다. 집은 은행에서 융자를 얻어 내가 직접 조금씩 조금씩 지었다. 은행융자는 한꺼번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 내주고 짓는 현장을 검사하고 또 내주고 하는 식이었다. 집을 다 짓고 나면 즉시 내 월급에서 융자를 강제로 갚아나가게 되어있다. 다 갚아야 집의 명의가 내 앞으로 이전되었다. 같은 대지에 집을 두 채 지었는데 큰집은 방이 세 개짜리로 세를 주고 나는 방이 두 개인 작은 집에 살고 있다. 뭐 우리가 잘사는 것은 아니다. 집세에 의지해서 사니까 어떨 때는 세든 사람이 돈이 없다고 집세를 못 낸다고 하면 기다려야 한다. 우리..

7. 키하울리 3

나는 아이들을 다섯 두었다. 딸이 둘, 아들이 셋이다. 나의 부모님 경우와 똑같다. 애들 중 어떤 놈은 아주 머리가 좋고 어떤 놈은 좀 쳐지고 그렇다. 나의 큰 애는 1948년에 태어났고 그 후 3년 터울로 아이들이 태어났다. 송게아에서는 관습이 그렇게 하도록 되어있다. 연년생은 좋지 않고 적당한 간격을 두고 태어나도록 했다. 그런데 요새 젊은이들은 성급해서 그런 간격을 지키지 않는다.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는데 우리 때는 그런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노인들이 아이가 세 살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다음 아이를 낳으라고 가르쳤다. 윗 아이가 좀 커야 갓난아기가 태어나도 수월하니까. 그러나 아이들 수에는 제한이 없었다. 한없이 많이 둘 수가 있었다. 딸이건 아들이건 상관하지 않는다. 큰애는 이제 50이 넘었는데..

6. 키하울리 2

나의 어머니는 술을 아주 좋아하셨다. 이웃에 가서 술마시기를 좋아하셔서 곧잘 집에 늦게 오셨기 때문에 어렸을 때는 우리가 저녁을 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내가 결혼하자 어머니는 아예 저녁 지을 부담이 없이 마음 놓고 술을 마실 수 있었는데 우리 형제들은 한편 걱정이 되었다. 나의 두 누님은 물론 나보다 더 먼저 결혼을 했다. 그들은 아주 먼데로 시집을 갔다. 한 누님은 킬로사라는 곳으로 갔다. 다우리로 염소를 많이 받았는데 돌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 다 팔아야 했다. 나는 그 후 oversea coporation 이라는 개인회사에 취직이 되어 어머니의 허락을 맡고 그 회사에 들어갔다. oversea coporation 은 땅콩을 가공하는 회사이다. 그 회사는 린디라는 곳에 있어서 나의 아내에게 고..

5. 지금 사람들은 옛날같지가 않다. 몇 명만 괜찮고 대부분 다 변했다 - 키 하울리 1

키하울리 (남, 73세) "지금 사람들은 옛날같지가 않다. 아주 몇 명만이 괜찮고 대부분 다 변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도시 뿐만 아니라 시골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차라리 도시에 이대로 있는 것이 낫다. 시골 사람들이 다 변해버려서. 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이름은 죠셉 힐라리 키하울리다. 나는 1926년 송게아의 키보세라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탄자니아의 남쪽인데 높은 산이 많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평범한 사람들로 한번도 어디 일자리에 채용되어본 본 적이 없다. 어머니는 농사를 지었고 아버지는 가축을 돌보았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네 살이 되기 전에 돌아갔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는 반면 나의 어머니가 우리 형제를 돌보고 키웠다. 우리를 도와 줄 다른 사람이 없었는..

4. 나의 즐거움은 내 노동의 댓가를 보는 것이다 - 아스테리아

아스테리아 페르디낭드 (여, 78세) “나의 즐거움은 내 노동의 댓가를 보는 것이다. 가령 내가 농사를 지어 수확을 해서 식량이 되면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하다. 보통은 아플 때나 또는 내가 무엇을 했는데 잘 안되었을 때, 즉 수확이 나쁠 때 빼고는 아무것도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없다.“ 내 이름은 아스테리아이고 카토마 마을의 일로게로에서 태어났다. 현재 78세이다. 부모님은 자식을 일곱 두었는데 나는 그중의 세 번째이다. 우리 아버지는 바나나 농장과 소가 여러 마리 있었다. 소가 열 마리도 넘었지만 어떤 소는 그의 친구가 돌보았기 때문에 정확히 몇 마리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소를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주었는데 그들은 소에서 나오는 똥으로 거름을 만들어 밭을 기름지게 했다. 아버지는 가축을 돌보는 외에..

21. 탄자니아식 빵과 과자

.챠파티 팬케잌처럼 생겼다. 밀가루와 물과 기름을 섞어 반죽하여 잘 치대서 얇게 밀어 후라이 팬에 부친다. 노릇하게 약간 갈색 반점이 생길 때까지 익힌다. 발효제가 들어가지 않고 만드는 과정이 비교적 간단하다. 탄자니아에서 가장 보편적인 빵이 챠파티가 아닐까 한다. 챠파티는 아침에 차에 곁들여 먹기도 하고 점심이나 저녁에 식사에 곁들이기도 한다. 탄자니아에 있는 한 이 챠파티를 피할 수 없다. 거리에서나 탄자니아인 집에서나 아니면 무슨 행사가 있을 때나 어디에선가 항상 이 챠파티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사모사 삼각형으로 생긴 일종의 튀김 만두다. 밀가루 반죽을 엷게 밀어 그 속에 고기나 야채를 넣고 삼각형으로 접어서 기름에 튀긴 것이다. 간식이나 아침, 혹은 간단한 점심으로 먹는다. 손으로 집어먹을 ..